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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링거, 한미 중단통보 전날 사들인 '암공격 바이러스'

입력 2016-10-11 14:10 수정 2016-10-11 21:51

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올무티닙 개발중단 통보 전날 바이러스 기반 항암제 2600억에 인수, 임상1상 마무리 조건

베링거인겔하임이 한미약품의 항암제 '올무티닙'의 개발중단 결정을 통보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9일 베링거는 바이러스 기반의 차세대 항암제를 사들였다. 그것도 임상3상을 마치는 조건이 아니라 임상1상을 끝내는 조건으로 거액을 지급키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30일 한미에 올무티닙의 권리를 반환하면서 마일스톤을 포함 7억3000만달러(약 8000억원)에 달했던 대규모 딜을 715억원을 지불한 채로 일단락했다.

이같은 판단을 내리는데 베링거는 어떤 고민을 했던 것일까? 항암제 임상중에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해서 곧바로 개발을 중단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다면 베링거의 항암제 개발방향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한미에 개발중단을 통보하기 전날 인수한 베링거의 항암제 딜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지난달 29일 오스트리아 바이오업체 바이라 테라퓨틱스(ViraTherapeutics)에 임상 1상이 끝나면 인수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차세대 항암 기술을 2억1000만 유로(한화 2604억)에 사들였다. '공격적으로 항암제를 확보하기'로 유명한 베링거인겔하임이 관심을 가진 기술은 무엇일까?

암세포가 생기는 기전 중 한 가지는 종양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 gene)에 변이가 생기면서 무분별하게 무한 분열하는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존 항암화학요법(chemotherapy)은 암세포와 같이 빠르게 자라는 세포를 타깃으로 하는 반면 비특이적이기에 정상세포까지 죽이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항체가 가진 특이성(specificity)을 이용해 암세포만을 겨냥하는 면역항암제 개발이 활발하다. 그런데 베링거인겔하임이 바이라테라퓨틱스에서 사들인 차세대 항암기술은 조금 독특하다. 항체가 아닌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Oncolytic virus(OV)라고 불리는 신개념 항암요법으로 인간세포에 기생해 질병을 유발시키는 바이러스 특징에 착안해 만든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료방법이다.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파괴하는 바이러스

Oncolytic virus의 “onco”는 종양을 뜻하며, “lytic”은 세포를 용해(lysis)시킨다는 의미로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특이적 겨냥하여 죽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이라테라퓨틱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VSV-GP ((Vesicular Stomatitis Virus)-(glycoprotein)) 바이러스를 이용해 정상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종양세포만 공격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기 전에 바이러스의 행동양식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바이러스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숙주 의존적으로 자손을 번식’하는 특징을 가진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감염되는 방식 중 하나는 세포에 발현하고 있는 특정 항원(혹은 수용체)에 결합하여 유전정보를 숙주 안으로 삽입한다.

이후 바이러스는 숙주가 가진 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해 자손번식에 필요한 유전정보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만들어 충분한 수가 되면 숙주세포를 용해(lysis)시키고 나온다. 숙주세포는 마치 바이러스의 증식공장처럼 이용되는 것이다. 숙주세포를 파괴시키고 나온 바이러스는 주변 세포들에 퍼져 같은 작용을 반복하게 된다.

보통은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 문제가 되지만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해 병원성이 없는 ‘착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조작한 바이러스는 암세포에 들어가서 빠르게 자손을 번식하고 암세포를 용해시킨 다음 다시 주변 암세포를 공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수포성 구내염바이러스(Vesicular stomatitis virus), 아데노 바이러스(adenovirus), 폴리오 바이러스(poliovirus), 허피스 바이러스(herpes virus)를 이용한다.

암세포에 특이성을 높이기 위해 암세포에서 발현율이 높은 분자를 인식하도록 유전적 변형을 하는 것이다. 종양억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암세포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바이러스 제조 공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반면 정상세포에 들어간 바이러스는 큰 문제가 없다. 바이러스에 의해 세포가 감염될 경우 일반세포에서는 정상적으로 종양억제(tumor suppress) 작용이 일어나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증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세포에서 분비하는 면역활성 신호분자인 인터페론도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외부물질을 인지∙감염되면 주변 세포에게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활성 신호분자를 퍼뜨리는 데, 이로 인해 주변세포(neighboring cell)는 항바이러스성 분자를 만들어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회사제공

VSV-GP는 현재 전임상 단계에 서 안정성과 효과를 확인 중이며, 바이라테라퓨틱스는 2018년에 첫 번째 임상을 시작할 계획으로 교모세포종(gliablastoma), 난소암(ovarian cancer)을 적응증으로 갖는다.

바이라 테라퓨틱스의 VSV-GP, 무엇이 특별한가

회사의 VSV-GP가 다른 회사의 Oncolytic virus(OV)가 가지는 차별성은 다음과 같다.

VSV-GP가 몸속에 들어가 암세포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의 공격을 피해야 되는데, 이를 위해 VSV(Vesicular stomatitis virus)가 가진 당단백질을 LCMV(Lymphocytic choriomeningitis)의 당단백질로 바꾼 형태로 다양한 암에 가능한 플랫폼 기술이다. 또한 체내에 바이러스가 침입할 경우 항체가 바이러스에 결합해 감염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데(virus neutraliizing anticody) 전임상 결과 VSV-GP를 동물에 투여할 경우 항체에 의한 중화현상이 나타나지 않기에 반복투여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VSV-GP는 숙주의 시스템을 이용해 번식을 하지만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의 유전체에 삽입하지 않기에 위험성이 적으며,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암세포와 더 잘 싸우게 하는 유전적 변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 예로 세포사멸이 잘 일어나도록 돕는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효과적인 면역반응을 위해 인터페론 유전자를 추가하는 방법이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을 복제하기 시작하는데, VSV-GP는 경쟁사의 OV에 비해 생활주기가 짧아 증식이 빠르기에 더 효율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바이러스를 증식하는 일은 생산면에서 항체를 포함한 단백질 의약품이나 직접 환자의 면역세포를 추출, 증식하는 방식의 세포면역 치료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에 가격적 이점이 크다. 회사는 VSV-GP를 다양한 세포주에서 고농도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효과는 암세포 특이적 사멸, 그 이상

OV를 처음 개발해 동물모델에 적용했을 때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암세포까지 사멸하는 효과를 보인 것이다. 이는 두 가지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상세포가 활성화 되면서 전반적인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바이러스가 빠져나오면서 암세포가 터지는데(rupture) 이때 암세포의 다양한 항원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마치 “백신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OV는 세포용해, 국지적인 염증반응을 유도하며 항암 면역작용을 유도할 수 있다. 베링거인겔하임과 바이라테라퓨틱스는 향후 VSV-GP를 환자에서 단독요법 그리고 기존 항암화학요법, 면역항암요법와 병용 투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베링거인겔하임 관계자는 "Oncolytic virus는 항암치료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바이라테라퓨틱스의 기술은 다른 회사에 비해 상당한 장점을 가진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회사가 향후 다른 제약사와의 파트너링을 확대하며 암 백신, 차세대 면역관문억제제와 같은 이뮤노 옹콜로지(immuno-oncology) 파이프라인에 주력할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