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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특허 연계제도 본격 시행 2년..헛심 쓰는 제약사들

입력 2017-05-12 07:22 수정 2017-05-12 07:22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제약사 50곳 복제약 독점권 160건 획득ㆍ年매출 50억 이상 전무..평균 9곳 독점권 공유..4년새 특허심판 2천건 청구 '소모적 경쟁'

허가·특허 연계제도 본격 시행 2년만에 제약사 50곳이 복제약(제네릭) 독점판매권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독점판매권을 나눠 갖는 탓에 이 제도를 활용해 시장에서 성과를 낸 제네릭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제약사들이 지난 4년간 2000건 이상의 특허 소송을 진행하면서 소송 비용 부담만 커지며 소모적인 경쟁을 펼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본격 시행된 2015년 3월부터 총 160개 품목이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FTA 발효로 도입된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제네릭 허가를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와 연계해서 내주는 제도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네릭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의 핵심은 ‘제네릭 판매금지’와 ‘우선판매품목허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제네릭 판매금지는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소송 기간 동안 제네릭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다. 식약처는 최초 제네릭 허가신청시 신청사실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는데 이 때 특허권자가 제네릭 발매는 ‘특허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제네릭 판매는 9개월 동안 금지된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특허도전에 성공한 제네릭에 부여하는 혜택이다. 가장 먼저 특허도전에서 승소한 제네릭은 9개월 동안 제네릭의 진입 없이 해당시장에 오리지널 의약품과 1대1로 경쟁하는 혜택을 받는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단계적인 도입 절차를 거쳐 2015년 3월1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우선판매품목허가 제네릭 승인 현황(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지난 2년간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활용해 독점 판매권을 획득한 제네릭이 160개에 달한다는 의미다.(같은 제품이라도 용량이 다르면 다른 제품으로 계산) 우선판매품목허가를 1건 이상 획득한 업체는 총 50개사다. 종근당과 한미약품이 각각 12건으로 가장 많은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았고 제일약품(9건), 유유제약(7건), 삼진제약(7건), 대웅제약(6건) 등이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판매품목허가 건수만 보면 지난 2년 동안 제약사들이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처방실적 자료를 보면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은 제네릭 중 지난해 처방실적이 50억원을 넘긴 제품은 전무했다. 적극적인 특허전략으로 경쟁사보다 먼저 제네릭을 발매하는 혜택을 받았음에도 시장에서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선판매품목허가가 사실상 독점판매권이 아니라는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은 제네릭 제품들의 경우 오리지널 제품은 17개다. 평균 1개 품목당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은 제네릭이 9개가 넘는다는 의미다. ‘아모잘탄’ 제네릭의 경우 20개 업체가 45개의 제네릭을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제네릭 업체 입장에서는 단독으로 특허소송을 진행,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독점으로 획득하고 독점판매 기간 동안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단독으로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은 업체는 JW중외제약, 대원제약, 보령제약, 한독테바 등 4곳에 불과하다.

제약사들이 공동으로 특허 소송을 진행하거나 비슷한 시기에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모두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부여하는 제도 특성상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독점판매권을 공유한 셈이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최초 특허심판 청구업체에 주어지는데, 특허심판은 최초 심판으로부터 14일 이내에 청구하는 제네릭은 모두 가장 먼저 청구한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A업체가 5월 1에 특허무효소송을 제기했고 B, C, D 업체가 5월 15일까지 같은 내용의 특허소송을 청구하면 A, B, C, D 업체 모두 최초 심판청구자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특허소송에 가담한 업체 모두 우선판매품목허가를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다. 식약처는 특허심판청구사실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경쟁업체가 단독으로 제네릭 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십개 업체들이 동시에 특허소송에 가담하는 전략을 펼치는 상황이 펼쳐졌다.

▲연도별 특허심판 청구 건수(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실제로 지난 2년간 특허소송이 급증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총 2212건의 특허심판이 청구됐다. 특히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본격 시행된 2015년에는 무려 1734건의 특허소성이 진행됐다. 이중 3월과 4월에만 무려 1563건의 특허 소송이 집중됐다.(3월 698건, 4월 861건)

국내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가장 이상적인 특허전략은 단독으로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획득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경쟁사가 단독으로 우선판매권을 가져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고 설명했다.

경쟁업체가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정 의약품의 특허소송이 제기됐다는 소식에 다른 업체들도 특허소송에 가담하는 ‘묻지마 소송’이 활성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뇨약 자누비아와 자누메트의 경우 총 10개사가 지난해 1월 제네릭의 우선판매품목허가를 승인받았는데, 우선 판매 기간은 2023년 9월2일부터 2024년 6월1일까지다. 제약사들이 7년 뒤에 판매할 제네릭을 위해 무더기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는 얘기다. 사실상 특허소송이 제네릭 허가를 위한 통과의례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경쟁업체가 단독으로 독점 판매권을 가져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장 진입도 불투명한데도 무더기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소모적인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면서 “일부 업체는 특허소송을 대거 제기한 이후 추후 취하하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제약사들의 과열경쟁으로 비용 부담만 높아지는 형국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