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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업 버텍스, 신약개발 성공 비밀무기 '기기 R&D'

입력 2017-07-14 13:36 수정 2017-07-14 13:36

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불가능한 개념' 낭포성섬유증 치료제 개발 가능 비결.."약물발굴부터 개발과정까지 생물학+화학+물리학 시너지 효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자리잡은 제약기업 버텍스(Vertex)엔 특별한 부서가 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방문한 버텍스 본사의 2층 227호. 문 앞에 'I R&D'라는 부서명이 적혀 있다. 기기 연구개발 부서(Instrumentation R&D department)를 줄인 말이다. 기기 연구개발은 해외 제약사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개념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연구원이 실험기기를 원활하게 쓰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버텍스의 I R&D 부서는 그 성격이 다르다.

버텍스 곳곳에는 ‘VERTEX’의 마크가 새겨진 실험기기들이 눈에 띄었다. 약물 스크리닝 기기부터 현미경까지, 모두 버텍스에서 직접 제작한 기기다. 단순히 시판된 기기를 직접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기기 민감도를 높여 더 정밀한 실험이 가능케 하고, 약물이 결합할 때 체내 단백질에 생기는 변화를 더 정확하게 예측한다. 자동화 로봇 플랫폼으로 세포주를 관리하며 측정 가능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실험기기도 있다.

"신약개발은 최소 10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에 실패할 경우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됩니다. 중요한 건 실패할 원인을 미리 아는 것. 바꿔 말하면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것입니다. 제약분야에서 기기 연구개발은 초기 약물 발굴부터 개발까지 전 과정에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신약을 발굴할 수 있죠. R&D의 효율성을 높이는 버텍스의 비밀무기(secret weapon), 제가 속한 I R&D 부서입니다."

버텍스는 혁신적인(innovative) 기업이다. 2011년부터 사이언스 매거진이 매년 선정하는 혁신기업 5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버텍스가 개발한 대표적인 약물은 낭포성섬유증(CF, Cystic fibrosis) 치료제로 현재까지 시판된 약물은 2개. 2012년에 첫 신약인 칼리데코(Kalydeco, ivacaftor)가 나왔다. 이어 2015년 출시된 오캄비(Orkambi, lumacaftor/ivacaftor)는 출시한지 1년 만에 매출액이 전년 대비 156% 증가한 8억9900만 달러(1조349억원)에 도달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런데 두 CF 치료제에 들어가는 이바카프터(ivacaftor)가 약물로써 가지는 특성이 무척 흥미롭다. 백규석 연구원은 “당시만 해도 약물은 특정 단백질에 결합해 기능을 막는 기전이 대부분이었다”며 “기능을 잃어버린(mal-function) 단백질이 다시 기능하도록 하는 개념의 치료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온 채널은 약물로 타깃하기에 무척 까다로운 특성을 가진 단백질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그 답은 I R&D 부서에 있다.

’0에서 100’이 가능케 하는 ‘기기 연구개발(I R&D)’

▲버텍스의 유리벽에 그려져 있는 삼각형 심볼. 생물학, 화학, 물리학이 각 점을 이루고 있다. 유리벽 뒤에 서서 웃고있는 창립자 Joshua Boger의 모습

버텍스의 I R&D 부서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려 보자. I R&D 부서는 오로라 바이오사이언스(Aurora Biosciences)로부터 출발했다. 오로라는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녹색형광단백질)를 개발해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로저첸(Roger Y. Tsien)이 세운 회사다. 오로라는 약물발굴에 필요한 기기를 만드는 회사로 낭포성섬유증에 집중해 약물 연구∙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어세이와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버텍스는 2001년 오로라 바이오사이언스를 합병한다. 그런데 버텍스는 단순히 낭포성섬유증 약물 후보물질만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약물발굴시설(drug discovery facility)과 핵심인력을 그대로 데리고 가게 된다.

버텍스 창립자인 조슈아보저(Joshua Boger)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약물(Drug)은 생물학, 화학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physics)까지 맞물렸을 때 혁신적인 신약이 나온다는 생각이었다. 낭포성섬유증 치료제를 만드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기가 개발됐다. 그 예로 약물타깃이 되는 체내의 전압의존적 이온채널(voltage-gated ion channels)의 생리학적 변화를 가시화, 약물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기기가 있다. 결과적으로 조슈아의 결정이 버텍스의 첫 번째 신약, 칼리데코와 연이어 오캄비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근본적인 CF 치료제, “망가진 염소이온 채널의 기능을 되돌리다”

칼리데코, 오캄비는 근본적으로 CF를 치료하는 약물이다. 세포 내의 생리학적 특징과 유사한 특징을 갖는 시스템에서 약물작용에 따른 구조변화를 스크리닝 한다. 두 치료제의 작동원리를 보면 버텍스의 독특한 접근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단백질의 생물리학적 특성을 변화, 기능을 되돌리는 원리다.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된다. 세포 안팎으로 다양한 이온이 존재하는데, 항상성 유지를 위해 세포막을 기준으로 세포 내/외에 적절한 이온농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조절하는 것이 이온통로의 역할이다. 낭포성섬유증은 유전적 결함으로 세포막에 존재해 염소이온(chloride ion) 농도를 조절하는 통로인 CFTR(Cystic Fibrosis Transmembrane Conductance Regulator)의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나타난다.

CFTR는 상피세포의 가장 바깥부분(apical surface)에 있어 호흡기관, 소화관, 피부에 분포한다. 그런데 CFTR에 변이로 염소이온, 수분이동에 이상이 생기고 장기를 보호하는 점액(mucus)이 비정상적으로 과다분비되면서 장기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CF는 영양실조, 골다공증 등 다양한 증상이 수반되며, 단명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CFTR 변이 종류만 1700개가 넘는다.

칼리데코(Ivacaftor)은 G551D, G178R를 포함한 9개 변이 유전자를 가진 영유아, 어린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다. 이들 변이가 생길 경우 CFTR 단백질의 전도성(conductance)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이온통로를 지나가는 염소이온이 줄어들게 된다. Ivacaftor은 ‘강화제(potentiator)’로 상피세포표면에 존재하는 채널이 열려 있는 시간을 늘려, 염소이온과 물이 세포안으로 유입되게 한다.

두번째로 출시된 오캄비는 Ivacaftor와 Lumacaftor를 병용하는 치료제다. Lumacaftor는 F508del 변이를 가진 환자를 겨냥하며, CF 환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변이타입이다. 이 경우 CFTR이 상피세포에 없는 것이 원인이다. Lumacaftor는 단백질을 조립하는 샤페론(chaperone)과 같이 역할을 해 잘못 접힌(misfolded) CFTR 단백질이 세포표면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준다.

오캄비는 약이 없는 희귀병에서 새로운 기전을 가진 근본적인 치료제라는 평가를 받아, 지난해 영국약물협회(BPS)로부터 '올해의 신약개발'상을 수상했다. 유망한 희귀질환 치료제로써 제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 갈리엥(Prix Galien)'상을 받기도 했다.

두 신약 모두 버텍스가 자체 제작한 장비들이 큰 기여를 했다. 단백질을 겨냥하는 약물을 개발하는데 물리학적인 접근방식이 더해지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버텍스는 이외에도 다양한 CF 환자군에서 총 6건의 임상을 진행 중이다. 후속 파이프라인을 위한 CF 스크리닝 기기는 비밀유지를 위해 회사 내에서도 보안이 철저한 곳에 있다. 최근 버텍스는 CF를 정복하기 위한 툴을 확보하기 위해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와 모더나 테라퓨틱스(Moderna Therapeutics)와 손을 잡았다.

’생물학 기반의 맞춤형 기기제작 가능케하는 ‘I R&D’

신약개발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 기기의 양적규모를 늘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그는 “신약개발을 하는 과학자에게 필요한, 맞춤형 기기(customized device)를 만들고 싶었다”며 “약물이 겨냥하는 생물학적 기전을 바탕으로 맞춤형 기기를 제작한다”고 강조했다.

백 연구원이 I R&D 분야로 오게 된 계기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의료기기(medical device)는 주목을 받는 반면 제약(pharmaceutical) 분야에서 기기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에 의문에서 시작됐다. 제약분야에서의 기기혁신에 대한 갈증이 느껴졌다. 그는 미국으로 오기 전 국내에서 맞춤형 실험기기를 만드는 회사도 창업했었다. 그러나 연구개발에서 어려움이 생기는 부분에서 니즈가 생기는데 이는 회사보안 , 특허 문제 등으로 외부 장비회사와 논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사업화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버텍스와 같은 형태의 I R&D 부서가 실제 제약사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로 그는 “약물발굴을 하는 과학자의 일상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기기역량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더 중요한 점으로 그는 “최종 사용자(end user)가 실험기기의 혁신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얘기하고 실험에서 구현되는 것을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 버텍스도 이 문화가 완전히 장착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샌디에이고에 위치하는 버텍스 입구, 내년엔 5월에는 근처의 더 큰 건물로 회사가 이동한다.

버텍스의 I R&D 부서는 약물개발 부서 안에 있다. 밤낮으로 같이 일을 하고 소통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백 연구원도 버텍스에 들어오고 나서 약물개발 연구원의 요청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생물학, 화학 공부를 하게 됐다고. 최근에는 UCSD 야간반에도 등록을 했다.

난제로부터 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기로 구현, 실험 속에 녹여낼 수 있는 역할이 I R&D의 핵심이다. 백 연구원은 “우리는 단순히 디바이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물개발에 필요한 물리학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단백질을 만났을 때 어떤 약을 디자인 할지, 어떤 에세이를 할지, 어떤 지표를 봐야할 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 일반적인 경우 데이터 베이스에서 비슷한 타깃을 보고 찾아가는 식이다. 그런데 물리학적 개념이 추가되면 약물 개발을 위해 단백질을 분석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

I R&D 부서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과 응용물리학(applied physics)의 두가지 부서로 구성된, 독립된 팀이다. 엔지니어링 그룹은 전기, 기계, 소프트웨어, 응용기기 등을 담당한다. 응용물리학 팀은 기기부품의 핵심 원리가 되는 분야의 최고 엘리트로 구성되 있다. 응용물리학은 MEMS fabrication, 원자핵 물리학(atomic & nuclear physics), 마이크로나노(micro nano), 현미경, 포토닉스(photonics) 등으로 매우 세분화된 분야다. 두 부서가 끊임 없이 교류하면서 기기 연구개발을 하는 모습이다.

”한국도 각 분야 과학자가 전방위적으로 모여 신약개발 총력 가해야”

혁신신약은 결국 생물학에서 시작된다. 한국 바이오산업에서도 제약사들이 혁신신약을 발굴하기 위해 생물학에 눈을 돌리고 있다. 버텍스가 시판한 두 치료제는 염소 이온통로라는 확실한 타깃이 있었지만, 기존 관점에서 다시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기존 약물개발 방식에 물리학이 맞물리면서 큰 시너지가 발휘했다. 10에서 100을 만들기도, 때론 0에서 100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는 식당으로 기자를 인도했다. 식당의 한쪽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환자들의 사진. 6년 동안 버텍스에 있으면서 그는 곧 3번째 신약이 시판되는 것을 본다. 약이 없던 CF 어린이 환자들이 직접 회사에 찾아오고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백 연구원은 직접 만든 기기로 나온 신약으로 환자의 생사가 결정되는 것을 보고 신약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는 물리학도로서 I R&D를 하면서 느낀 최고의 결과물에 대해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다 찾아와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냐고 물어볼 때”라며 “약물발굴 과정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되는 과정인데, 이러한 부분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약개발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으로 전방위의 전문가들이 모여 여러 각도에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엔지니어링이 강한 나라다. 바이오 산업이 퀀텀 점프를 하기 위해선 학문 간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식당 벽을 가득 매운, 버텍스에서 개발한 약물 덕분에 건강해진 아동 환자들이 그린 그림 그림과 감사편지, '버텍스가 아니였으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살려줘서 감사하다'란 어구가 눈에 띈다. 매일 가는 장소에서 환자를 살리는 약을 만들어야겠다는 그들의 소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사진, 버텍스의 약을 먹고 목숨을 구한 환자가 자신의 발에 약물구조를 문신으로 새겼다. 그 옆에 약물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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