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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적폐 1순위' 연대보증제 폐지 가능할까

입력 2017-07-10 10:08 수정 2017-07-10 10:08

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새 정부 출범 전 논의는 '지지부진'..문 대통령 핵심공약으로 지목

"이 회사가 실패한다면 '더는 한국에서는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 만난 한 바이오텍 대표가 겪은 '연대보증제' 이야기다. 공동창업자들이 떠나고 맡게 된 대표자리에는 50억원의 연대보증이 먼저 꽈리를 틀고 있었다. 그는 "평균 2.8회 재도전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자들과 달리 우리나라가 1.2회에 불과한 것은 연대보증제 때문"이라면서 "다행히 무사히 엑싯(Exit)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소개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연대보증제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소·중견 기업 육성을 위한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약속하면서 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연대보증제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대주주나 대표이사의 재산으로 채권을 담보토록 하는 연대보증은 창업가에게 '적폐 1순위', '공공의 적'으로 평가받는 제도다. 기업이 파산할 경우 연대보증을 선 대표이사는 함께 파산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창업과 재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바이오스펙테이터가 창간 1주년을 맞아 40개 바이오기업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5%가 폐지를 주장했다.

▲바이오스펙테이터가 지난 6월 창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바이오기업 대표의 95%가 연대보증제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대보증 폐지는 국회를 중심으로 꾸준히 입법이 추진됐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채권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을 기업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 투자 위축 등의 우려가 덮었기 때문이다. 웹젠의 창업자인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하거나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기업에 보증하는 경우 연대보증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기술보증기금법'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3건의 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정무소위원회 회의록(올해 2월 22일)을 보면 연대보증제 폐지보다는 단계별 축소에 힘을 싣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회의록에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연대보증제 폐지를) 법 개정을 통해서 일률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부담이 있다"면서 "사업성이나 신용도가 불확실한 벤처가 중소기업이 자금 조달에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책금융기관이 부실률이 높아지면 다른 기업에 대한 보증이 축소될 수 있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개인사업자에 대해서는 연대보증을 폐지했으며 법인의 경우 연대보증 대상을 실제경영자(대표이사, 최대주주 등)으로 완화(기술보증기금 등이 보증한 기업이 기관투자자 투자 유치시)하고 창업 5년 이내 신규보증 기업의 경우 연대보증을 면제해주는 등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벤처캐피털협회는 회사의 모든 채무를 경영자, 대주주 등이 포괄적으로 연대해 의무를 부담하는 '포괄적 연대보증 조항' 대신 개별 위반사항에 따른 실제 손해액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투자 유치 협상을 진행중인 한 바이오텍 대표는 "초기에 제안한 투자사들의 경우 대부분 '연대보증'을 요구했는데 바이오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소규모 투자사의 경우 정도가 더 심했다"면서 "사실상 사채 수준의 연 20% 이상의 복리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바이오텍 대표는 "국내 제약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 협상을 하는데 표준계약서에 '연대보증'을 명시해 요구해 이를 거부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연대보증제 폐지를 명문화하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일선 현장으로까지 이를 연대보증제 폐지를 확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병관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정권 초기이고 중소벤처기업부 구성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보니 연대보증제 폐지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문재인 정부가 연대보증제 폐지에 확고한 의지를 가진 만큼 조만간 구체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선영 바이로메드 사장은 최근 바이오스펙테이터와 인터뷰에서 "연대보증제는 시장경쟁에서 '베니스의 상인' 시대로 돌아가는 것"면서 "특히 1~2년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바이오산업에는 연대보증제는 적용해서는 안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