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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셉션' 현실로? 감정·행동 조작하는 'Cal-Light'

입력 2017-07-12 09:39 수정 2017-07-12 10:35

바이오스펙테이터 이은아 기자

권형배 막스플랑크 박사팀 "칼슘+빛 이용 뇌 세포와 행동 상관관계 이해”..우울증 뇌전증 등 활용 가능성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고 이를 조작해 행동마저 제어 할 수 있을까? 영화 ‘인셉션’에서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가짜 기억을 심고 실제로 겪은 일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뇌 속에서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기억은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과정을 먼저 알아야한다.

막스플랑크 플로리다 신경과학연구소의 권형배 박사 연구팀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줄 신기술 ‘캘라이트(Cal-Light)’를 개발해 최근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에 발표했다.

캘라이트(Cal-Light, Calcium and Light-Induced Gene Handling Toolkit)는 빛과 칼슘을 동시에 이용해 특정 행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표지하고,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신경세포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 되는지 확인한 후 이를 조절해 행동까지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캘라이트는 기존에 알수 없었던 신경세포와 행동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핵심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표지하는 기존 기술의 한계

이 연결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특정 행동에 따른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표지(labeling)해야 한다. 특정 세포의 활성을 제어할 수 있는 스위치도 필요하다. 캘라이트 기술은 두 가지 모두 가능하게 한다. 물론 기존에 사용되는 기술(칼슘이미징, 조기발현유전자(immediate early gene, IEG) 마커, CaMPARI 등)도 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한계점이 존재한다.

▲표지된 신경세포가 진짜 활성화된 세포인가 ▲활성화된 세포가 실시간으로 표지되는가 ▲행동을 코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로 행동과 신경세포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캘라이트 기술은 이러한 한계를 개선하고 직접적인 신경세포-행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먼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칼슘이미징 기술은 세포 내 신호전달에 의해 변화하는 칼슘의 농도를 이미징함으로써 세포의 활성을 측정할 수 있다. 유전자조작을 통해 칼슘표지자(GECIs, Genetically encoded calcium indicators)를 발현해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실시간으로 표지할 수 있지만 표지할 수 있는 뇌 영역이 제한돼 있고 칼슘 신호가 일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칼슘이미징은 유전자발현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행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조기발현유전자(immediate early gene, IEG) 마커다. 그 중에서 c-fos는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표지할 수 있고 유전자를 발현시켜서 세포의 활성도 조절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c-fos를 이용할 때는 doxycycline이라는 약물이 사용되는데 동물의 먹이에 약물을 넣고 빼는 방법으로 세포를 표지하는 스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c-fos는 세포 내 cyclic AMP에 의한 신호전달 등의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발현되므로 다양한 이유로 증가하는 cyclic AMP에 대해서도 모두 반응한다. 즉, 강력한 유전자 발현 마커이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온/오프할 수 있는 스위치가 없고 특이도도 떨어지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캠파리(CaMPARI) 기술은 캘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칼슘과 빛(자외선)에 반응해 세포를 표지하는 방법이다. 활성화된 세포를 표지할 수 있지만 유전자 발현까지 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행동과 활성화된 세포 사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캘라이트, 특정행동에 대한 신경세포를 표지하고 조작하는 법

권 박사팀이 개발한 캘라이트는 청색광과 칼슘 농도를 동시에 인지해 활성화된 신경세포 내에서만 유전자(리포터 유전자, 형광)를 발현시킬 수 있다. 즉, 시공간적으로 정확하게 특정 행동에 따른 신경세포의 활성을 그대로 유전자 발현으로 코딩할 수 있는 장치이다.

▲권형배 박사 연구팀의 Cal-Light 기술 원리

원리는 이렇다. 캘라이트는 두 개의 합성 단백질로 구성된다. 하나는 막통과(transmembrane, TM) 도메인, 칼모듈린(CaM), TEV-N, AsLOV2, TEV seq, tTA로 융합되고, 다른 하나는 M13, TEV-C 로 구성된다.

세포 안으로 칼슘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칼슘에 반응하는 두 단백질인 M13과 칼모듈린은 서로 결합하고 마침내 떨어져있던 단백질분해효소인 TEV-C과 TEV-N도 서로 만나서 분해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단백질분해효소가 인식하는 유전자 서열(TEV-seq)은 청색광을 인지하는 AsLOV2에 가려져있어서 쉽게 인식하기 어렵고 청색광이 비춰질 때만 AsLOV2가 구조변화를 일으켜 잘릴 수 있다. 이때 잘려나간 tTA는 핵 안으로 들어가 리포터 유전자를 발현하며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정확하게 표지할 수 있게 된다.

캘라이트의 놀라움은 하나 더 있다. 진짜 핵심은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다. 광유전학에서 널리 쓰이는 특정 단백질을 리포터 유전자로 이용해 표지된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스위치로 사용할 수 있다.

이동민 박사와 공동 제1저자로 연구를 진행한 현정호 박사는 “캘라이트 기법으로 특정 행동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를 정확히 관찰하고 또 조절할 수 있다”며 “기존에 연구하기 어려웠던 세포와 행동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연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말 캘라이트를 통해 세포와 행동사이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걸까? 권 박사팀은 마우스가 보상을 받기 위해 레버누르기 행동을 할 때 작동하는 운동피질 신경세포들을 표지했다. 이제 표지된 신경세포가 진짜 레버누르기라는 특정 학습행동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볼 차례다. 이를 위해 노란색 빛에 반응해 신경세포를 억제하는 할로로돕신(eNpHR) 단백질을 캘라이트 바이러스와 함께 운동피질영역에 주입해 레버누르기와 연관된 세포에서만 발현되도록 했다.

▲연구내용을 소개한 동영상 스냅샷 (https://vimeo.com/220502210?ref=fb-share&1)

레버누르기-보상 학습이 된 마우스에 노란색 빛을 쬐어주자 표지된 신경세포의 활성이 억제됐고, 마우스는 더 이상 레버를 누르지 않았다. 하루 후, 노란색 빛이 없는 상태에서 레버누르기 행동은 다시 관찰됐다. 원하는 시간에 특정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작하여 행동까지 제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캘라이트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물에서도 특정 행동과 표지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시공간적인 제약 없이 관찰이 가능해졌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캘라이트의 적용 가능성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캘라이트 기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영화 인셉션으로 돌아가자. 캘라이트로 다른 사람의 뇌에 거짓 기억을 주입할 수 있게 됐다(물론 이론적으로). 주입하고 싶은 특정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를 채널로돕신(청색광에 반응해 신경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단백질)을 리포터유전자로 사용해 표지한다. 그리고 원하는 타이밍에 청색광을 쬐어주면 그 기억이 되살아 날 것이다. 마치 실제로 겪은 일인 것처럼.

그렇다면 우울증 환자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캘라이트를 통해 세포수준에서 기쁨이나 행복을 나타내는 신경세포들의 회로(연결망)를 표지한 다음 활성화 시켜주는 방식이다. 이론대로라면 반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복구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좀 더 실현 가능한 단계는 뭐가 있을까? 현정호 박사는 후속연구로 캘라이트를 통한 뇌전증(Epilepsy) 치료효과를 마우스 동물모델에서 연구 중이다. 캘라이트-할로로돕신 바이러스를 마우스 뇌에 주입해 경련(Seizure)을 일으키는 뇌 부위만 선택적으로 표지하고, 그 후 경련을 유도한 마우스에 노란색 빛을 조사한 후 경과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현 박사는 “노란색 빛으로 경련을 일으키는데 관여한다고 표지해 놓은 신경세포를 억제시키면 경련이 일어나는 증상(seizure score)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캘라이트는 순간의 특정 행동과 감정에 따른 신경세포의 활성을 실시간으로 표지할 수 있기 때문에 '뇌 투명화기법(Clarity)'과 함께 사용할 경우 환상의 콜라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뇌의 어느 영역에서, 어떤 신경망이, 어떻게 서로 연결하고 있는지를 전체 뇌 수준(whole brain-level)에서 연구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캘라이트 기법은 막스플랑크 플로리다 연구소에서 특허 출원 신청을 한 상태이며, 이 기법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addgene.org 사이트에 등록돼 있다.(Plasmid #92390, #92392, #92391, #9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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