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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미라' 개발 스크립스연구소, Next는 '중개연구 강화'

입력 2017-07-19 09:43 수정 2017-08-14 09:26

바이오스펙테이터 이은아 기자

기초과학부터 초기임상까지 ‘벤치 투 베드사이드’ 완성 목표

“노벨상 수상자 4명, FDA 승인 약물 7개, 스핀아웃한 회사 70개, 미국 특허 1000여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기초 의생명과학 중심 연구기관인 ‘스크립스연구소(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TSRI)’에서 나온 성과다. 지난해 약 18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도 스크립스연구소에서 개발됐다.

이런 스크립스연구소에서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초연구 결과가 실제 환자를 위한 임상연구로 연계되는 ‘벤치(bench·실험실) 투(to) 베드사이드(bedside·임상 및 치료)' 중개 연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스크립스연구소

◇ 캘리포니아 의과학연구소와 합병, 학부 프로그램 2019년 개설

스크립스연구소는 중개연구 중심 연구소로 발돋움하기 위해 최근 캘리포니아 의과학연구소(California Institute for Biomedical Research, Calibr)와 합병했다. 캘리포니아 의과학연구소는 2012년 미충족 의학적 필요를 충족할 신약에 대한 중개연구를 가속화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스크립스연구소의 탄탄한 기초연구와 캘리포니아 의과학연구소의 신약개발 능력을 통합해 기초연구를 넘어서서 전임상, 초기 임상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해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춘 중개연구 중점 연구소가 되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두 연구기관의 기초연구와 중개연구의 강점을 결합해 탄탄한 기초과학을 기반한 전임상 및 초기임상 단계의 자체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것으로 연구소의 재정적인 안정성도 기대된다.

스크립스연구소에서 연구하는 한인과학자 한경호 박사는 "궁극적으로는 연구소의 가치를 높여 연구와 임상연구, 교육 등에 재투자하는 구조로 '벤치 투 베드사이드 (bench-to-bedside)‘ 중개연구 모델의 자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뿐만 아니라 신약개발 위험 리스크를 피해 이를 주저하는 제약회사들과 달리 비영리 연구기관에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선도해야 한다는 의지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미 두 연구기관은 당뇨병과 만성 폐쇄성 폐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 치료법을 개선할 수 있는 항체 엔지니러링 플랫폼 개발과 면역항암제 개발을 포함해 협력해왔다.

스크립스연구소에서 또 주목할 점은 인재양성이다. 생물학 및 화학 부문 대학원 과정은 미국 내 상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연구 인력과 연구 인프라를 가진 스크립스 연구소가 이제는 학부생 교육과정도 제공한다.

2019년 가을 학기부터 개설될 스크립스연구소 바이오사이언스 칼리지(Scripps Research Biosciences College)는 기존의 대학원 프로그램과 동일한 수준으로 제공한다. 단, SRBC 프로그램은 실험실 집약적 학업 환경을 제공하면서 생물학, 생명공학, 생물정보학, 약물 발견 및 개발, 화학 생물학 등에 특화된 2년 짜리 코스다. 이후 1년 동안 추가로 진행되는 석사 과정 프로그램도 있다.

한 박사는 "스크립스연구소의 우수한 세계 석학들과 함께 실험실에서 생물학 연구를 직접 배우고 수행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의생명과학에 특화된 인재를 양성하고 인력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 휴미라 탄생시킨 리차드 러너 박사 “나는 ‘실험실 쥐’”

스크립스연구소는 인슐린 발견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엘런 브라우닝 스크립스(Ellen Browning Scripps) 여사가 1924년 스크립스 대사 클리닉을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당뇨병 치료에 중점을 둔 대사질환 전문시설이었지만 1961년 면역학자 플랭크 J. 딕손(Frank J. Dixon) 박사가 의생명과학(biomedical) 파트를 개설하면서 분야를 점차 넓혔다. 1993년 스크립스 헬스 병원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지금의 세계 최대 규모의 의생명과학 기초연구기관으로 발전했다.

현재 스크립스 연구소는 화학과, 면역학과 미생물학과, 통합구조 및 전산생물학, 신경과학과, 분자의학과 등 5개의 연구 파트가 있으며, 2004년 플로리다 주 주피터에 캠퍼스가 추가 설립됐다. 오래전부터 연구소와 대학원의 융합을 시도한 이곳은 약 200개가 넘는 독립된 연구실(Lab)과 2500명이 넘는 과학자가 모여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이 곳에서 전세계 매출 1위 블록버스터 치료제인 ‘휴미라’가 탄생했다. 휴미라는 2011년말까지 25년간 스크립스연구소 회장을 맡은 리차드 러너 박사의 작품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그렉 윈터 박사와 함께 파지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용해 특정 항원에 결합하는 인간항체 절편으로 전환시킨 인간 단일클론항체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휴미라 개발한 리차드 러너 박사 연구실 모습. 실험실 장비 위 벽면에는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한 박사는 "러너 박사는 현재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실험실에서 활발하게 디스커션하고 연구하고 있다. 본인을 ‘실험실 쥐’라고 표현할 정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에 도전한다."고 설명했다.

휴미라 외에도 폐암·대장암 치료제인 ‘사이람자(Cyramza)’, 56년만에 개발된 루푸스 치료제 ‘벤리스타(Benlysta)’, 신생아의 호흡장애증후군(RDS) 치료제인 ’서팍신(Surfaxin)’, 모상세포백혈병 치료제인 ‘류스타틴(Leustatin)’, 다발성신병병증 치료제 ‘빈다켈(Vyndaqel)‘, 소아 신경모세포종 치료제 ‘유니툭신(Unituxin)‘등의 치료제가 스크립스연구소에서 시작됐다.

1980년 이후부터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 연구소를 나와 회사 창업을 시작했다. 유전자 편집기술을 보유한 상가모 바이오사이언스(Sangamo Biosciences), 면역항암제 전문 회사인 Tyr pharma와 페이트 세라퓨틱스(Fate therapeutics)를 비롯해 70 여개의 회사가 설립됐다.

한 박사는 "탄탄한 기초연구 역량과 좋은 아이디어를 갖춘 스크립스연구소 주변에는 투자자가 몰리고, 자연스레 회사 창업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샌디에이고 바이오 클러스터를 형성하는데도 일조했다"고 덧붙였다.

▲스크립스연구소 리차드 러너 박사 Lab에서 연구하는 한경호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