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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약의 약가인하 저지 몸부림과 희귀한 성공사례

입력 2017-09-20 08:32 수정 2017-09-20 08:32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피엠지제약, '레일라' 제네릭 발매 지연 목적 전방위 특허전, 약가조정 재평가 요청..제네릭 발매로 약가인하시 매출 타격 치명적, SK케미칼 작년에 제네릭 등재 취소시키며 약가인하 모면 사례 기록

국내 보험약가제도에서 제네릭이 발매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보험상한가는 자동으로 30% 떨어진다. 제네릭 발매 1년 뒤에는 종전의 53.55% 수준으로 내려간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판매 중인 업체 입장에선 제네릭 발매로 인한 점유율 하락보다 약가인하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이 타격이 더 크다.특허 만료 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 제네릭 업체들을 대상으로 전방위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다.

제네릭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저항은 다국적제약사만의 일은 아니다. 국내제약사들도 자체개발한 신약, 개량신약 등의 시장을 제네릭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고심이 깊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 한국피엠지제약의 천연물의약품 '레일라'를 두고 제네릭 업체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2012년 발매된 레일라는 당귀, 목과, 방풍 등 한약재로 구성된 천연물의약품으로 '골관절염의 증상 완화' 용도로 사용된다. 한국피엠지제약은 바이오업체 바이로메드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레일라를 개발했고 안국약품과 공동으로 판매 중이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부터 한림제약, 대원제약, 한국글로벌제약, 한국휴텍스제약, 바이넥스, 알리코제약, 국제약품, 이니스트바이오제약, 마더스제약, 아주약품 등 10개사의 레일라 제네릭 제품의 보험약가가 등재됐다. 이들 10개 업체들은 제네릭 허가와 약가등재 절차를 거쳐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보건당국에 공표한 것이다.

▲피엠지제약의 '레일라'

이미 레일라와 제네릭 제품간 치열한 특허 공방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레일라'의 용도특허 무효심판에서 제네릭 업체들이 승소했고, 지난달 말에는 한국피엠지제약이 제네릭 업체들을 상대로 제기한 조성물 특허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는 등 제네릭 업체들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 중이다.

하지만 피엠지제약이 패소한 특허소송의 항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용도특허 침해금지청구와 조성물특허 무효심판 등 또 다른 특허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특허공방은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네릭 업체들이 제네릭 발매를 천명하자 피엠지제약은 약가인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약가조정 재평가를 요청했다. 원칙적으로 제네릭의 발매와 동시에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인하가 결정되지만 피엠지제약은 “현재 특허공방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약가인하에 대한 재평가를 심평원에 요구했다.

제네릭 제품의 발매로 레일라의 보험상한가는 411원에서 30% 인하돼야 하지만 피엠지제약의 약가조정에 대한 재평가 요청으로 약가인하는 보류된 상태다.

심평원 관계자는 “피엠지제약이 특허가 유효하다는 이유로 약가 조정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 제네릭 제품들의 발매 여부를 확인한 이후 레일라의 약가인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연도별 '레일라' 처방실적 추이(단위: 억원,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현재로서는 레일라의 약가는 1~2개월 이후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피엠지제약이 주장하는 특허 유효 여부와 관계 없이 제네릭 제품이 1개라도 출시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는 자동으로 인하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미 제네릭 업체들이 특허소송을 거쳐 발매 의사를 밝히고 약가를 등재했기 때문에 발매를 번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통상적으로 제네릭 제품의 약가등재가 이뤄지면 오리지널 업체가 한 두 달이라도 약가인하 시기를 늦추기 위해 약가인하를 즉각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심평원 측 설명이다.

피엠지제약 입장에서는 레일라의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구사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레일라의 처방실적은 216억원으로 국내제약사가 개발한 제품 중 손 꼽히는 실적을 기록 중이다. 피엠지제약의 작년 매출액은 327억원으로 레일라가 3분의 2 가량을 차지한다. 레일라의 매출 감소는 회사 실적에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레일라의 매출이 줄어들면 기술이전한 바이로메드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바이로메드는 지난해 매출 68억원 중 25%인 17억원을 레일라의 기술이전료로 거뒀다.

▲연도별 '스티렌' 처방실적 추이(단위: 억원,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내 개발 의약품 중 동아에스티의 천연물의약품 ‘스티렌’이 2015년 90여개 제네릭의 발매로 시장 점유율 하락과 약가인하로 인한 치명적인 매출 타격을 경험한 바 있다. 스티렌의 지난해 처방실적은 237억원으로 2012년 810억원보다 무려 70.7% 추락했다. 동아에스티는 최근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경험하고 있다.

만약 제네릭 발매로 레일라의 약가가 인하된 이후 피엠지제약이 특허소송을 뒤집으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기존에 약가인하로 입은 손실을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네릭 업체들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한번 인하된 약가가 다시 인상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면 오리지널 업체의 적극적인 특허 전략과 보건당국에 강력한 이의제기로 예고된 약가인하가 번복된 사례가 한 번 있었다.

SK케미칼의 천연물의약품 ‘조인스’가 극적으로 약가인하 위기에서 벗어난 독특한 사례로 평가된다. 지난 1997년 골관절염치료제로 허가받은 조인스는 위령선·괄루근·하고초 등 생약 성분으로 구성된 천연물의약품으로 연간 3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 간판 제품이다.

당초 조인스의 제네릭을 허가받은 업체 40여곳은 지난해 10월1일 제네릭 발매 계획을 세우고 지난 2010년 미리 보험약가를 등재했다. 지난 1998년 등록된 '복방 생약제로부터 유효활성 성분의 추출ㆍ정제방법과 그 추출물을 함유한 생약 조성물' 특허가 9월30일 만료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일찌감치 제네릭 발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동안 SK케미칼은 제네릭으로부터 조인스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SK케미칼은 지난 2005년 4월 '관절 보호용 생약조성물' 특허를 등록했고 지난해 4월에는 '쿠커비타신 B의 함량이 감소된 관절염 치료 및 관절 보호용 생약조성물' 특허를 추가로 등록했다. 이들 2개 특허의 존속기간 만료일은 각각 2021년 5월18일, 2030년 7월14일이다. 새롭게 등록한 특허를 근거로 제네릭의 발매 시기를 늦추겠다는 노림수였다.

하지만 이미 제네릭 제품들은 지난해 10월1일에 발매하는 조건으로 보험급여 목록에 등재됐고, 조인스의 약가도 30% 인하(402원→324원)가 미리 예고된 상태였다.

SK케미칼은 조인스의 약가인하 예고일을 앞두고 심평원에 후속특허가 등록돼 있다는 자료를 제시하며 약가인하 시기 조정을 요청했다. 이번에 피엠지제약이 레일라의 약가인하를 저지하기 위해 약가 재평가를 요구한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심평원은 제네릭 업체들에 제네릭 판매 예정시기를 문의했고 광동제약, 한독, 휴온스, 신풍제약 등 41개사 모두 10월1일에 발매하지 않는다고 회신하자 보험급여목록에서 제네릭 제품을 삭제했다. 보험급여에 등재된 이후 판매 계획이 변경됐다고 보험급여가 취소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연도별 '조인스' 처방실적 추이(단위: 억원,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결국 조인스는 극적으로 제네릭 발매를 저지시키며 약가인하를 모면하는데 성공했다. 조인스의 지난해 처방실적은 306억원으로 전년(298억원)보다 2.7% 늘었다. 만약 제네릭 발매를 저지하지 못했더라면 약가인하로 큰 폭의 매출 손실을 감수해야 했지만 기적적으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리지널 제품을 보유한 업체는 제네릭 진입에 따른 손실이 치명적이기 때문에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구사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다양한 성장동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업체 입장에선 제네릭 발매 저지를 위해 사활을 거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