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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이라는 유전자·분자진단 시장확산 안되는 이유

입력 2017-09-28 15:50 수정 2017-09-28 16:29

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분자진단사업 핵심이슈 및 전략' 바이오경제포럼 개최..산업계 vs 의료계 '시각차'

유전자·분자진단은 '맞춤(정밀)의료의 꽃'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기업들이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의료현장에서는 외면받고 있다. 기술의 성숙도 문제뿐 아니라 의료인의 수용성, 인·허가부터 건강보험 적용까지의 각종 규제 등이 복잡하게 엮여 있는 탓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28일 국회에서 '분자진단사업 핵심이슈 및 전략'을 주제로 열린 바이오경제포럼 역시 유전자·분자진단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각차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특히 신기술 발전에 따라 유전자·분자진단의 확산을 원하는 기업과 축적된 임상경험을 강조하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는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맞섰다.

이날 발제에 나선 국내 대표 분자진단 개발업체 씨젠의 천종윤 대표이사는 분자진단 활성화를 위해 국민 계몽, 병원진료구조 개선(당일 검사, 당일 보고), 국가진단제도의 확립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먼저 "분자진단은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진단방법이지만 대부분이 이를 몰라 선택할 권리마저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국가에서 제공하는 자궁경부암 검사인 자궁경부세포검사를 예로 들었는데 현재 검사는 위음성률이 높아 분자진단인 'HPV DNA검사'가 필요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이를 몰라 활용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자진단의 장점은 정확성과 신속함이지만 현재 의료환경에서는 그 가치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환자의 질환 확인을 위해 분자진단을 의뢰하더라도 분자진단검사실을 거쳐 결과를 통보받는데 적어도 3일에서 10일까지 걸린다. 수십종의 분자진단 장비를 가지고 그보다 많은 분자진단 검사를 수행해야 하는 검사실은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즉시 검사를 할 수 없기 때문. 천 대표는 "이상적인 분자진단 검사실 환경은 원 플랫폼(검사장비)으로 100종 이상의 모든 분자진단 검사항목을 검사할 수 있어야 하며 실시간으로 무작위로 의뢰되는 검사항목들에 대해 즉시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당일검사-당일보고'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은 기술 발전에 의한 극복이 필요한 부분이다.

천 대표는 마지막으로 조기진단에 의한 질병예방, 포괄적 진단에 의한 올바른 처방, 신속한 진단에 의한 적기 치료를 할 수 있는 분자진단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검사비용 역시 현재보다 저렴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술력의 발달로 분자진단 검사 비용이 낮아지면 더 많은 환자가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며 결국은 치료비용이 줄어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분자진단 확산을 위한 국가진단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전자 분석(진단)업체인 마크로젠의 정현용 대표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등 기술 발전의 속도에 발맞춘 탄력적 제도의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NGS를 통한 암 진단을 건강보험 적용하는 과정에서 민간기관의 참여가 배제된 점이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인증을 받은 연구실에서는 상업적 서비스를 가능토록한 미국의 CLIA제도를 허용하면 맞춤의료 활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 보는 분자진단에 대한 시각은 많이 달랐다. 김종원 삼성서울병원 교수(진단검사의학과)는 "기존 진단보다 비싼 분자진단이 궁극적으로 의료비를 낮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을 늘 수밖에 없다"면서 "2만~5만원하는 청력검사 대신 50만~150만원하는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의사들은 오랫동안 활용하면서 임상경험을 축적한 검사를 버리고 갑자기 새로운 것을 택하지 않는다"면서 "당일 검사, 당일 보고가 될 만큼 다중검사가 완전히 성숙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많은 분자진단이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쉬운 진입과 쉬운 퇴출이 가능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방암 예후진단 키트인 '온코타입 DX' 개발에 참여한 백순명 연세의대 교수(종양내과)는 "분자진단이 임상적으로 검증된 상태에서 적용하면 사회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검사들을 광범위하게 빨리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각 기관마다 진단을 분석검증할 준비가 안된 현실에서 확산은 위양성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개발한 난소암 검진키트 '오버체크(Ovacheck)'가 높은 정확도에도 미국 산부인과학회가 사용거부해 실패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와 동시에 신의료기술평가까지 통과해야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규제로 인해 유전자·분자진단의 확산이 어렵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오현주 식약처 체외진단기기과 과장은 "허가를 받더라도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못하면 시장에 출시조차 못하도록 하는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