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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실험동물 사육환경, '실험데이터' 바꾼다

입력 2018-02-01 13:25 수정 2018-02-01 14:11

천병년 우정비에스씨 대표

[천병년 대표의 실험동물 이야기③]'표현형' 변화로 데이터 왜곡 우려..'대형화' 위한 투자 필요

▲천병년 우정비에스씨 대표

난치병 극복은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이자 바이오산업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의학이 발전하고 과학이 진보해 인간의 유전자가 분석되고 각종 치료제와 기법이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난치병은 우리 삶을 위협한다. 난치병을 비롯한 인류의 질병을 정복하기 위한 신약 개발은 복잡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하고 많은 비용이 든다. 사람에게 안전하고 유효성이 있으면서 질병 원인만 찾아서 없애는 약물을 찾는 작업은 무척 까다롭고 힘들다.

특히 최근에는 신약개발 초기단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신약후보물질을 찾아낸 다음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에 약물의 효능과 안전성을 동물 실험을 통해 평가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투약여부를 판정하는 근거가 되는 데이터이다. 유효성과 신뢰성 있는 데이터가 있어야 다음 과정인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신약개발 전 과정에서 동물실험으로 입증해야 하는 비임상/효력 시험데이터는 매우 중요하다. 신약개발이 과거의 디스커버리, 전임상, 임상 1·2·3상으로 이르는 전통적인 개발 방식을 벗어나 '퀵 윈-페일 패스트(Quick-Win, Fail Fast)'로 변화해 철저한 초기연구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후기 임상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현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을 종종 보았다. 특히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당연히 동물의 품질이 보장되어야 유의한 실험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주요한 이유이다. 현장 사정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구매하는 동물의 품질은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최적의 사육환경과 표준화된 사육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환경이나 사육에 필요한 기술을 적당히 무시하고 동물실험을 진행하게 되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또한 운이 나쁜 경우에는 해외에서 고가에 들여온 실험동물을 제대로 시험에 사용하지도 못하고 미생물에 감염되어 폐사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유전자 조작된 질환모델, 정신질환과 관련된 연구, 항암제 개발에 따른 면역력이 전혀 없는 실험동물 등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들은 사육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험 중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정확한 원인 분석이 되어야 하는데 이 분석은 실험동물의 사육 환경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육조건이라 하면 동물의 거주 환경, 사료는 물론 본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놀잇감(environmental enrichments)의 제공을 말한다.

첫째 감염관리 시스템이 불충분 하거나 △둘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요인(공기의 질/ 소음/ 온 습도)이 있거나 △셋째 본능을 충족시키는 놀이기구가 없거나 맞지 않거나 △넷째 사료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 동물도 사람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생리물질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되어 후보물질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거나 낮출 수 있다. 테스트하는 물질이 갖고 있는 독성까지 추가가 된다면 성공을 실패로 유도하는 요인들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 바이오 선진국인 미국 및 유럽의 경우 정확한 데이터 생산을 위해 경쟁적으로 실험동물 사육시설을 표준화, 고급화, 대형화하고 있다. 이런 시설은 실험동물이 외적인 환경변화 즉 사육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도록 청결하고, 안정되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통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육조건이 안 좋다고 해도 동물 자체 유전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환경에 의해 연구자가 원하는 것과 다른 실험동물로 바뀌게 된다. 표현형(phenotype)이 달라지는 것이다. 표현형(phenotype)은 유전적인 변화로 일어나는 해부, 생리, 병리적 질환적인 특징을 말하게 되는데 DNA 염기 서열이 바뀌지 않아도 외부 환경요인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일어나는 가역반응으로 다른 실험동물로 바뀌게 된다. 표현형의 변화를 쉽게 설명하면 한국의 아기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장년이 되면 DNA는 한국인이지만 외모만 빼고 상당부분은 미국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정환경이 좋은 집안에 입양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는 또 다르다. 음식 등 성장 환경이 사람의 체질을 바꾼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의 생체내 기능 연구를 위한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KMPC, Korea Mouse Phenotyping center)이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컨소시엄(IMPC, International Mouse Phenotyping Consortium)등과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표준화된 시설에서 표현형 분석기술의 표준화 및 선진화를 구축하고 표현형 연구를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연구자 대부분은 “세계적 브랜드의 기업으로부터 좋은 실험 동물을 받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웬만한 사육시스템에서 실험하면 되지”라고 사육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육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비용 절감과 효율화 측면에서 대형화는 필수적이다. 최근 활발해진 유전체 연구로 유전자 기능 해석과 마우스 코호트 운영을 위해 많은 실험동물(마우스)이 필요해진 것도 대형화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이미 수만 개의 마우스 케이지를 가진 실험동물실을 운영하는 기관들이 많다. 중국 모 대학의 유전체 연구소의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인 10만개가 넘는 마우스 케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마우스를 통해 감염 물질을 주사해 항체를 만드는 진단용 제품도, 정밀의학에서 필요한 다양한 형질과 형태의 마우스도 분자생물학에 기반한 유전체연구의 결과다. 연구를 위한 다양한 유전자 변형 마우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전자 조작된 마우스를 보유하고 유지하는 대형 기관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반도체와 반도체공장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자체 공장이 없기 때문에 해외 선진국에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신약개발 성공이 가져다 주는 부의 가치는 자동차 회사의 신차 출시로 얻는 가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차를 동네 카센터나 정비공장에서 만들겠다면 이게 가능할까. 바이오 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는 1만개이상 케이지를 운영하는 기관이 불과 한 두곳 뿐이다. 규모면에서 외국과는 비교가 안된다. 이제 바이오 업계도 삼성전자가 기흥에 이어 평택에 세계 최대 37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우고,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연간 100만대 이상 생산이 가능한 최대규모의 설비로 공장을 세운 것처럼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투자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