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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석의 신약연구史]미지의 존재 '바이러스' 발견

입력 2019-05-03 13:45 수정 2019-05-03 13:45

남궁석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

바이러스와의 전쟁①바이러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질병 대유행으로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경각심 불러일으켜

그동안 신약연구사에서는 암과의 기나긴 전쟁, 그리고 고지혈증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병과의 인류 투쟁의 역사를 다루었다. 신약연구사 3부가 되는 이번 연재부터는 감염성 질환, 특히 바이러스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병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역사를 다룰 것이다.

▲그림 1 : 190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의 주요 사망 원인 변화 추세 (인구 10만명당 사망수). 인플루엔자와 페렴 등의 감염성 질환은 20세기가 시작할때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사망을 가져오는 질병이었다. 특히 1918년의 인플루엕자 대유행은 위의 그래프에서도 보이듯 급격한 사망율의 증가를 가져왔다.

여러번 소개했던 그래프이지만 20세기 초반 가장 많은 사망의 원인은 폐렴과 같은 박테리아 감염, 혹은 인플루엔자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이었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으로 알려진 인플루엔자는 전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의 감염자를 냈었고 5000만명에서 1억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외에도 소아마비(poliomyelitis), 홍역(measle), 황열병(Yellow fever) 등의 바이러스 질병은 심각한 공중보건상의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최근에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나 B형 및 C형 간염(Hepatitis B & C)과 같은 바이러스 질병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그러나 20세기 중 이러한 바이러스 질병의 상당수는 백신의 등장에 의해서 상당수가 예방 가능한 질병이 되었으며,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기 어려웠던 일부 바이러스 질병들에 대해서도 속속 치료제가 등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는 암과 같은 질병에 비해서 그래도 바이러스성 질병의 경우 질병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상당수 전장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전투에서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게 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까? 그리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앞으로 어떤 난제가 남아 있을까? 새로 시작하는 신약연구사 3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다루어보도록 하자.

미지의 존재, 바이러스의 확인

사실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되는 수많은 질병 중의 상당수는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인간이 인식하기 훨씬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가령 천연두의 경우 기원전 1145년에 사망한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이라에도 천연두 자국이 나타나 있으며,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천연두의 기록이 나타났다[1].

그러나 특이한 것은 바이러스성 질병의 일부에 대해서는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가령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가 천연두(Smallpox)를 우두법에 의해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나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1895)가 광견병(Rabies)백신을 개발한 것은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아직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바이러스의 발견은 파스퇴르나 로베르토 코흐(Roberto Koch, 1843-1910)가 주창한 세균 병인설(Germ theory of diseases)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즉 박테리아가 인간의 대부분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믿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질병의 원인 세균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세균 병인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균 상태의 유지가 필요했고, 파스퇴르의 조수였던 찰스 챔버랜드(Charles Edouard Chamberland, 1851-1901)는 1884년 파스퇴르의 실험에 사용하기 위하여 도자기로 만들어진 필터 기구를 만들었다[2]. 이것은 세균보다 작은 구멍인 0.1-1마이크로미터 직경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거친 물은 박테리아가 걸려져 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챔버랜드는 이외에도 오늘날의 고압멸균기(autoclave)에 상응하는 기구 역시 파스퇴르의 실험을 위해 만들었다.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박테리아를 걸러낼 수 있었던 이 기구가 최초의 바이러스의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즉, 이 필터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통과하는 박테리아보다 작은 ‘어떤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 TMV)는 가지과에 속하는 식물들인 담배, 고추, 토마토 등의 다양한 식물에 감염될 수 있는 (+)-RNA 바이러스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는 감염되지 않는 식물 바이러스를 굳이 ‘신약연구사’ 에서 소개하는 것은 TMV는 인간이 최초로 발견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1886년 독일의 농화학자인 아돌프 메이어(Adolf Mayer 1843-1942)는 식물에 반점을 일으키는 식물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다른 학자들처럼 이 질병이 세균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정체 불명의 식물 질병이 세균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은 러시아의 젊은 생물학자인 디미트리 이바노프스키(Dimitri Ivanovsky, 1864-1920)이었다. 그는 담배 모자이크 병에 걸린 식물 유래의 추출물을 챔버랜드가 만든 챔버랜드 필터로 통과시켜 존재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바노프스키가 만든 추출물은 여전히 모자이크병을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결론에 의거하여 이바노프스키는 1892년 이 질병이 세균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균보다 작은 ‘어떤 물질’ 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결론내렸다[3]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의 미생물학자인 마르티누스 베이제리닉(Martinus Beijerinick, 1851-1931) 역시 이바노프스키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얻었다. 그 역시 이 질병이 박테리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병원성을 가져오는 물질이 입자가 아닌 일종의 액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그림 2 : 파스퇴르의 조수이던 찰스 챔버랜드 (좌상) 는 파스퇴르의 무균 실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액체를 여과하여 세균을 걸러내는 ‘챔버랜드 필터’ (Chamberland filter) 를 고안했다 (좌중,우). 러시아의 생물학자 디미트리 이바노프스키 (Dimitri Ivanovsky)는 식물에 일어나는 모자이크병증의 추출물을 챔버랜드 필터로 걸러내서 박테리아를 제거하더라도 모자이크병이 나타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여 ‘박테리아보다도 작은 입자’ 가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초의 동물 바이러스의 발견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보다도 작은 물질’의 존재가 알려진 후 얼마 안되어 동물에서 병을 유발하는 비슷한 물질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물질은 베이제리닉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액체가 아닌 일정한 크기를 가진 입자라는 것이 발견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뢰플러(Friedrich Loeffler, 1852-1915)와 파울 프로쉬(Paul Frorsch, 1860-1928)는 오늘날 구제역 바이러스병 (Foot and Mouse Virus)로 알려진 질병의 병원체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이바노프스키나 베이제리닉과 마찬가지로 해당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물질은 챔버랜드 필터로 걸러지지 않고 이를 통과함으로써, 이 질병 역시 박테리아보다 작은 병원체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병원체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Kitasato shibaraburo, 1853-1931)가 만든 더 작은 물질을 여과하는 필터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이 결과를 통하여 이들은 그들이 발견한 병원체가 액체가 아닌 박테리아의 크기보다는 훨씬 작은 입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1].

이를 필두로 하여 오늘날 바이러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진 질병의 병원체가 속속 알려지게 되었다. 그 예가 황열병(Yellow Fever Virus)으로써,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나고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를 침공한 미군은 실제 전투에서 손실된 전사자보다도 황열병에 의해서 희생된 희생자가 13배에 달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황열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미군은 군의관 월터 리드(Walter Reed, 1851-1922) 소령을 쿠바로 파견하였다. 이미 1881년 쿠바의 의사 카를로스 핀리(Carlos Finlay, 1833-1915)는 황열병이 모기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주장하였지만 그 주장은 실험으로 입증되지 못하였다. 리드와 그의 동료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실제로 황열병을 옮기는 모기에 물리는 생체실험(!)을 실시하였고 황열병에 실제로 감염되었다. 황열병에 감염된 자원자 중 제시 라제어(Jesse Lazear, 1866-1900)는 결국 사망하였다. 이들은 황열병에 감염된 직후의 환자에서 채취한 혈액을 주사함으로써 황열병을 옮길 수 있다는 것도 발견하였으며, 이 병원체는 기존에 주장되었던 박테리아가 아니라는 것 역시 증명하였다[4]. 이렇게 모기 유래의 열병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견된 인간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되었다. 물론 황열병 바이러스 자체의 분리는 월터 리드가 모기 유래의 병원체를 발견한 이후 30년이 흐른 뒤였다.

1908년 소아마비(poliomyelitis)가 바이러스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 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와 에르윈 포퍼(Erwin Popper, 1879-1955)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이들은 소아마비로 사망한 9세 아동의 척수(Spinal cord) 유래 추출물을 박테리아를 제거하기 위하여 필터링하고, 이를 여러 실험 동물에 주사해 보았다[5]. 그러나 처음 주사해 본 토끼, 기니아 피그, 마우스 등의 실험 동물에서는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후 그들은 두 종의 원숭이(Cynocephalus hamadryas와 Macacus rhesus)에 척수 추출물을 주사해 보았다. 곧 이 원숭이들에게서는 사람의 소아마비와 놀랄 만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났다. 란트슈타이너와 포퍼에게는 상당한 행운이 따른 셈인데 그 이유는 사람의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그들이 시험에 사용한 구세계 원숭이에 속하는 두 종의 원숭이에서는 감염되지만, 마모셋(marmoset) 등이 포함된 신세계 원숭이(New world monkeys)에는 거의 감염되지 않기 때문이다[6].

이렇게 20세기 초반에는 세균보다 작은, 아직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병원체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예로는 뎅기 바이러스(1907), 홍역 바이러스(1911) 등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1911년 페이튼 라우스(Payton Rous, 1879-1970)는 플리마우스 록 종의 닭의 종양 조직에서 암을 유발하는 추출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이 발견이 어떻게 암의 발생 원인의 규명으로 이어지는지는 이미 신약연구사의 ‘암의 원인을 찾는 여정’ 편에서 자세히 소개하였다).

TMV와 같은 식물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와 동물 바이러스 이외에도 박테리아에도 감염되는 ‘필터를 통과하는 감염성 물질’ 이 존재한다는 것이 비슷한 시기에 알려지게 되었다. 1915년 프레데릭 트워트(Frederick W. Twort, 1877-1950)는 천연두를 일으키는 백시나 바이러스(Vaccina virus)를 체외에서 배양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하던 도중, 배지에 생성된 박테리아 콜로니 중에서 특이한 형태를 가진 것을 발견하였다. 트워트는 이 콜로니가 박테리아가 죽어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박테리아를 죽이는 물질’ 은 포도상구균(Staphycococus)에 감염되어 전파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물질을 자라는 박테리아에 접종하면 세균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세균 배양액은 투명하게 되었다.

이 물질은 다른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박테리아를 걸러내는 필터를 통과하였다. 트워트는 1915년 이 결과를 보고하였지만[7] 그 이후에 이 연구를 계속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인 펠릭스 디할레(Felix d’Halle, 1873-1949)는 1917년 트워트와는 독립적으로 이질을 유발한 세균에 감염되어 이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아내었다. 디할레는 그가 발견한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는 이 물질에 ‘박테이아를 먹어치우는’ 이라는 의미를 담아 ‘박테리오파지’ (Bacteriophage, bacteria eater)라는 이름을 붙였다. 디할레는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는 박테리오파지의 성질을 이용하여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닭의 배설물에서 분리한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여 닭의 티푸스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1919년 보였다. 이러한 디할레의 발견은 20세기 전반기에 많은 관심을 모았던 파아지 요법(Phage therapy)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트워트나 디할레 역시 다른 동물 및 식물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발견한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는 전염성 물질’의 화학적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바이러스의 구조와 화학적 실체가 알려지는 것은 1930년대에 들어 원심분리기, 전자현미경과 같은 새로운 실험기법이 등장한 이후가 되어서였다.

▲그림 3 : 미 육군 군의관 월터 리드(좌상)는 쿠바에서 황열병이 모기에 의해서 전파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직접 모기를 자원자에 접종하여 황열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하여 모기가 황열병에 의해서 옮겨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908년칼 란트슈타이너와 에르윈 포퍼 (좌하) 는 소아마비로 숨진 환자의 척수 조직액을 필터링한 액체를 원숭이에 주사하여 소아마비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였다. 소아마비 바이러스 (우하)의 정제와 전자 현미경적 관찰은 란트슈타이너와 포퍼의 발견 이후에 약 30여년 뒤에나 가능했었다.

1918년, 인플루엔자의 전세계적인 대유행

이렇게 박테리아보다 작은 전염성을 가진 ‘물질’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던 20세기 초, 인류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바이러스에 의한 대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1918년의 유명한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다.

사실 ‘스페인 독감’이라고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인플루엔자가 시작된 것은 1차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로 추정되고 있다. 수많은 인원이 상주하던 군 주둔지와 수많은 부상병들이 치료받던 군 병원이 인플루엔자가 퍼지게 된 근원지인 셈이다. 다만 당시에 1차 대전의 당사자이던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는 전시의 보도 통제 때문에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던 반면, 당시 중립국이던 스페인에서는 이러한 보도 통제가 없어서 인플루엔자의 유행이 크게 보도되었으며,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까지 독감에 걸린 것 때문에 스페인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고, 이 덕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쟁 속에서 수많은 인원이 이동하면서 인플루엔자는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전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의 사람이 감염되었으며, 이중 5000만명에서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의 평균 수명은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시작한 1918년 무려 12년이 감소되었으며, 주로 유아와 노인의 사망율이 높아서 ‘U’자 형의 사망 곡선을 그리는 다른 인플루엔자와는 달리 1918년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젊은층의 사망률이 높은 특이한 유형이었다[8].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은 아시아에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1918년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 의하면 740만명이 감염되어 14만명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2300만명의 감염자 중에 39만명이 사망하였다.

1918년 초에 시작된 첫번째 대유행이 끝난 후, 1918년 후반기에 시작한 두번째 유행은 첫번째 유행보다 좀 더 치명적이었다. 사실 1918년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대부분의 희생자는 두번째 유행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전염병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보통의 경우 심한 증상을 나타내는 변종 바이러스를 가진 환자의 경우 활동이 제한되고, 증상이 약한 변종을 가진 환자들만 밖에 나와서 활동하므로 증상이 약한 변종이 집단 중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이 패턴을 반대로 바꾸었다는 가설이 제시되었다. 즉, 전선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병원에 후송된 사람들은 보다 심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증세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전선에 남아 있었고(따라서 전선에서 희생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따라서 병원에 후송되어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는 좀 더 증상이 심한 바이러스일 것이라는 가설이다[9].

이렇게 1918년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은 인류의 존속에 영향을 줄 정도의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으킨 병원체와 질병에 대한 미약한 지식은 이를 막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바이러스 질병의 대유행은 바이러스 질병과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이러한 경각심은 곧 바이러스의 이해에 대해서 여러가지 돌파구를 가져오게 된다.

다음 연재에서는 1930년대 전자현미경, 바이러스 순수분리 및 배양 등의 기술의 발전과정과 이를 이용한 백신의 개발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그림 4 : 1918년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약 5억명의 환자와 5천만명에서 1억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산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판데믹 (Pandemic)이다. 상단 : 1918년 인플루엔자 환자를 임시 수용한 버몬트 대학의 도서관과 입학식에 전원 마스크를 착용한 브리검 영 대학 학생들. 하단 좌 :1900년부터 1960년까지 평균 수명은 지속적으로 증가되었으나, 1918년 미국의 평균 수명은 12세가 감소하였는데, 이것은 인플루엔자로 인한 약 60만명 이상의 사망자 때문이었다. 하단 우 : 1918년의 인플루엔자는 통상적인 인플루엔자의 사망 통계와는 상이한데, 통상적인 인플루엔자는 어린아이나 노인의 희생이 많았지만 1918년의 인플루엔자는 청년층에서도 높은 사망율을 기록하였다[8].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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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stig, A., & Levine, A. J. (1992). One hundred years of virology. Journal of virology, 66(8), 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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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n, Shaukat, et al. "Characterization of the New World monkey homologues of human poliovirus receptor CD155." Journal of virology 82.14 (2008): 7167-7179.

Twort, F. W. (1915). An Investigation on the nature of the ultra-microscopic viruses. The Lancet, 186(4814), 1241–1243. doi:10.1016/s0140-6736(01)20383-3;Twort, F. (1930). Filter-passing transmissible bacteriolytic agents (Bascteriophage). The Lancet, 216(5594), 1064–1067. doi:10.1016/s0140-6736(00)86452-1 

Taubenberger, J. K. (2006). The origin and virulence of the 1918 “Spanish” influenza virus.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50(1), 86.

Ewald, Paul W. 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 Oxford University Press on Demand,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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