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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과학 저널리즘의 새도전 『어떻게 뇌를 고칠 것인가』
입력 2019-07-08 08:29 수정 2019-07-08 08:29
바이오스펙테이터 서일 기자
과학 독자가 원하는 것은 교양인가 소통인가
보통 사람은 과학을 얼마나 알아야 할까? 아니 과학은 보통 사람에게 자기를 얼마나 소개해야 할까? 넓고 넓은 과학의 세계에서 어떤 분야의, 어떤 내용을, 어떤 맥락에서 다루어야 할까? 과학 저널리즘의 고민이다. 생명과학을 바탕으로 한 신약개발 뉴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저널리스트도 같은 고민을 했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신경생리학을 연구했고, 과학 기자가 된 지는 3년째다. 기자가 된 이후 3년 동안, 연구 경험을 살려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Alzheimer's Disease) 치료제 개발 소식을 취재했다. 기사의 주요 독자는 생명과학 전공자, 환자를 마주하는 의사, 바이오 신약개발 업계 사람이거나 과학과 산업 정책을 입안하는 담당자들이었다. 기자가 논문에 가까운 전문적인 과학 기사를 내면, 전문가 독자들은 적절하게 활용했다. 그런데 그동안 수집한 정보와 자료에 새 임상시험 결과와 연구 결과를 보완하고, 이해를 돕는 그림을 직접 그리고, 전문 과학 기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읽는 단행본에 적합한 호흡과 글쓰기로 다시 원고를 만들었다. 기자는 왜 저자가 되려고 했을까?
2017년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60세 이상 환자는 약 77만명이다.(「2016 전국 치매역학조사」, 중앙치매센터) 전체 치매 환자 가운데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74.4%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환자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 100만명, 2039년에는 200만명이 치매를 앓을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보았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2015년 기준 4600만명이었던 치매 환자의 수는 2030년에는 7500만명, 2050년에는 1억3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환자는 질병에 걸린 후에도 꽤 오랜 기간 살아가지만, 인지 능력과 운동 능력이 떨어져 24시간 간병이 필요하다. 간병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과 돈은 환자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준다. 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치매 환자와 관련해 발생한 직간접적 비용은 11조7000억원 정도였는데, 2040년이 되면 34조2000억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8년 건강보험 예산은 70조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생명과학으로 알츠하이머 병을 고칠 수 있을까?
공동체의 문제를 찾아내고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역할이라면, 과학 저널리즘은 치매와 퇴행성 뇌질환과 알츠하이머 병에 주목해, 원인을 분석하고 치료제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그동안 신약을 만들려고 하는 전문가들의 공동체가 가진 문제의식에 집중해서 기사를 썼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문가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치매 환자가 없는 집을 찾기 힘들고, 그로 인해 생기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줄이려 애쓰지 않는 집을 찾기 어렵다.
이 책은 신약을 만들어 문제를 풀어보려는 혁신적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넘어, 직접 고통을 받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 꿈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는 초기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과학 저널리즘을 구성해보려는 도전이다. 저자는 필요한 도전에 기꺼이 응하기로 했다. 독자들은 더 이상 호기심을 채워주는 정도의 교양에 충실한 과학책에 만족하지 않는다. 직접 찾아보고 공부하는 독자들은 현장의 과학과 더 깊게 소통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과학 저널리즘이다. 저자는 기사와 논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그래서 쉽지 않지만 그러나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 「어떻게 뇌를 고칠 것인가-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을 중심」으로는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에 대한 가장 최근의 이야기다. 현황과 구체적인 전망, 앞으로의 가능성까지를 제시한다. 책은 단순한 트렌드 탐방을 넘어 과학적 분석으로 한 발 더 들어간다.
저자는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 관련 학술논문,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과 주목받는 국내외 바이오테크의 연구 내용 등 300여 편의 자료를 검토하고, 연구자들을 직접 취재한 내용을 종합했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집중 분석과 과감한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에서 가장 중요했던 실패들을 살펴본다. 실패를 분석하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으면 성공이기 때문이고, 실패를 공개하는 것으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장 아밀로이드 가설과 2장 아두카누맙에서는 이렇게 성공에 가장 가까워진 실패를 다룬다.
아밀로이드 가설의 어제와 오늘
1장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의 원동력이었던 ‘아밀로이드 가설(Amyloid Cascade Hypothesis)’과 그에 따라 진행된 신약개발의 개요를 살펴본다. 1992년 존 하디(John A. Hardy)와 제럴드 히긴스(Gerald A. Higgins)가 「사이언스(Sceince)」에 아밀로이드 가설을 발표한다. 알츠하이머 병 환자 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많이 발견된다. 존 하디와 제럴드 히긴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자체에 독성이 있으며,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뭉친 플라크가 알츠하이머 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인지 능력 저하 등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플라크가 신경세포 사이에 쌓이면서 신호전달을 막으면, 기억도 판단도 운동도 막힌다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가설에 따르면 이미 만들어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거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만드는 효소를 억제하면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었다. 2018년 1월 기준 미국 임상정보사이트(clinicaltrials.gov)에는 모두 112개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관련 임상시험이 등록되어 있다. 대부분 바이오젠(Biogen), 로슈(Roche), 일라이릴리(Eli Lilly) 등 전 세계적 규모의 대형 제약기업들이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다. 실패했던 임상시험까지 세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환자의 인지 능력 등이 유의미하게 회복된 경우는 없었다. 이로 인해 아밀로이드 가설을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저자의 분석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알츠하이머 병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자로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압도하는 것은 없다. 다만 알츠하이머 병의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단순히 없애는 데만 집중했던 것이 문제라고 분석한다. 환자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되는 시점에는 이미 환자의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동안 증상이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지점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려는 노력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신약개발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들이 아밀로이드 가설을 서둘러 포기하기보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치료가 가능한 초기 환자 가운데 임상시험 대상자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성공에 가장 가까워진 실패, 아두카누맙
2장에서는 아밀로이드 가설을 바탕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가장 최근에, 가장 커다란 규모로 실패한 바이오젠의 신약 후보물질 ‘아두카누맙(Aducanumab)’을 살펴본다.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 병 환자 뇌 속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에 결합하게끔 설계하고 만든 항체다. 뇌 속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microglia)는 아두카누맙에 있는 Fcγ를 인지하는데, 미세아교세포는 이렇게 인지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먹어치운다(대식작용). 결과적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앨 수 있다.
아두카누맙은 임상시험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인지 능력을 되돌리지 못했고, 임상시험 과정에서 환자의 뇌가 붓는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2019년 3월 아두카누맙의 공식적인 실패 발표가 있었다. 아두카누맙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는, 임상시험 실패 발표 후 시장에서의 반응으로 증명되었다. 아두카누맙 실패 발표 다음날, 연구를 주도한 바이오젠과 파트너였던 에자이의 시가총액 265억달러가 사라졌다.
아두카누맙은 거의 13년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아밀로이드 가설에 따른 치료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효과적인 후보물질을 찾아냈으며, 꾸준하게 임상시험을 진행해, 결국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데까지 성공했다. 저자는 이런 노력에 먼저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치료제 개발의 메커니즘이 좀더 정확하고 정교해진다면, 신약개발 연구자들이 결국 치료제를 개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결국 아밀로이드 가설에 가장 충실한 치료제 후보물질인 아두카누맙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1장과 2장이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였다면, 3장 조기진단, 4장 바이오마커, 5장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은 ‘지금부터의 이야기’다. 이 세 장에서는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의 새로운 출발점을 살펴본다.
빨리 찾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빨리 찾아야 고칠 수 있다
3장 조기진단(Early Diagnosis)은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의 프레임을 바꾸는 첫 번째 주제에 대한 이야기다. 환자가 인지 기능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으면 신경과 전문의는 환자와 보호자를 면담하고 문진해 알츠하이머 병 여부를 판단한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이 책 부록에 실려 있는 간이정신상태검사(mini-mental state examination, MMSE)와 치매임상평가척도 박스 총점(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 sum of boxes scores, CDR-SB)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 알츠하이머 병으로 최종 진단을 받은 환자의 30% 정도는 알츠하이머 병이 아니다. 이는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에서 중요한 문제다. 알츠하이머 병 임상시험에 알츠하이머 병 환자 아닌 사람이 최대 30%나 참여할 수 있으며, 정확한 임상시험 데이터가 나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은 인지 기능에 이상을 느낄 때다. 그런데 환자가 인지 기능에 이상을 느낄 때는 이미 환자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가득 쌓여 있어,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상태다.
알츠하이머 병은 진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저자는 조기진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근거는 국제적인 공신력을 지니는 규제 기관의 입장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미국 FDA와 유럽 EMA는 2018년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인지 기능 저하라는 증상 중심 기준이 아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대상자에게 일어나는 분자 수준의 병리적 변화를 임상시험 기준으로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3장은 이런 규제 기관의 입장 변화에 관한 맥락을 살피면서 뇌척수액, 혈액, 아밀로이드 전구 펩타이드, 혈뇌장벽 손상 정도, 타우 단백질, 신경미세섬유 경쇄 등을 이용한 조기진단 기술의 발전 현황과 발전 가능성을 살펴본다.
바이오마커
4장은 바이오마커(Biomarker)다. 바이오마커는 생리·화학적 현상과 질환 상태를 정량화·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생체 내 지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심혈관 질환에서 대표적인 바이오마커는 혈압과 콜레스테롤이다. 미국 FDA는 1992년 신약개발 임상시험에 바이오마커 개념을 처음으로 인용했지만, 알츠하이머 병 분야에서는 아직 바이오마커가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4장에서 키트루다나 비트락비 같은 항암 신약개발에서 바이오마커가 어떤 식으로 활용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이를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신약개발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속도’는 기존의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는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한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뇌 속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병리 인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인지 기능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떨어지지 않는 일반적인 노화 과정에서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검토하던 연구자들은 ‘속도’를 살펴보았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얼마나 빨리 쌓이느냐에 따라 알츠하이머 병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면, 이것은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이오마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환자의 조기진단,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상자 선별과 최적의 임상시험 조건 마련, 환자 맞춤형 치료제 선별과 효과적인 처방 등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4장에서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신약개발에 바이오마커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주목받는 미국 바이오테크 ‘디날리테라퓨틱스’의 사례를 살펴보기도 한다.
환자의 뇌를 열어보지 않고,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
5장은 2019년 현재 기준 가장 현실적인 바이오마커로 평가되는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이하 PET)을 살펴본다. PET는 방사성 물질을 환자에게 투여해, 몸속에서 일어나는 특정 생리·화학적 현상을 측정하는 검사법이다. 현재 PET는 암세포가 어디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영상으로 확인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포도당과 비슷한 구조의 물질에 방사성 물질을 처리해 환자 몸속에 투여하면, 정상세포보다 영양분을 많이 쓰는 암세포 주위로 몰려간다. 이때 방사성 물질이 방출하는 방사선을 감지해 영상으로 만들면 암세포의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대표적으로 영양분을 많이 쓰는 곳이 뇌다. PET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뇌 속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바이오마커로 쓸 수 있다.
현재 알츠하이머 병 바이오마커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뇌척수액 검사다. 뇌를 감싸서 보호하고 있는 뇌척수액에는 알츠하이머 병과 관련된 여러 물질이 섞여 있다. 이를 분석하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뇌척수액은 검출이 어렵다. 환자 척수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어 뇌척수액을 추출하는데, 나이가 많은 대상자에게 자주 실시할 수 없고 부작용도 있다. PET는 방사성 물질(PET 추적자)을 정맥주사로 투여하고 1~2시간 정도 기다려, 약 30분 간 촬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5장에서는 현재 연구되고 있는 PET의 현황을 살펴본다.
3장, 4장, 5장이 앞으로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에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살펴보았다면, 6장, 7장, 8장, 9장은 아밀로이드 가설 이후의 방향성에 대해 다룬다.
아밀로이드 가설 다음은 타우
6장에서는 타우(Tau) 단백질에 대한 연구를 살펴본다. 타우 단백질의 원래 역할은 뉴런의 모양을 유지하는 것이다. 보통의 세포들은 둥그런 공 모양을 하고 있다. 공 모양의 장점은 세포 안에서 물질을 전달할 때 거리가 짧다는 것이다. 그런데 뉴런은 전선처럼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전선처럼 길쭉한 모양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신호전달에는 유리하지만, 이런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구조가 필요하다. 건축 현장에 세워지는 비계와 비계를 연결하는 클램프처럼 구조를 지탱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타우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즉 타우에 문제가 생기면 뉴런의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신호전달이 원활해지지 않고, 해당 부위의 뇌 기능이 저하된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주목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타우 단백질은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에 비해 타우 단백질을 건드리는 문제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었다. 6장에서는 퇴행성 뇌질환과 병리 타우 단백질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타우 신약개발에 접근하는지 살펴본다. 더불어 병리 타우 단백질이 퍼져나가면서 질환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막는 단백질 분해 시스템에 대한 소개도 다룬다.
뇌를 고치려면, 뇌로 약물을 보내는 것이 먼저
7장은 이중항체(Bispecific Antibody) 이야기다.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뇌까지 약을 보내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뇌가 중요한 부위이다 보니 우리 몸은 몇 겹의 보호막으로 뇌를 감싸고 있다. 대표적인 방벽이 혈뇌장벽이다. 혈뇌장벽은 뇌혈관을 보호하고 있어, 영양분으로 쓰이는 포도당과 산소 정도만 통과시키고 덩치가 큰 물질의 출입을 막는다. 문제는 뇌를 치료하려는 약물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두카누맙과 같은 항체는 덩치가 커서 혈뇌장벽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는 통과하지 못할 것을 감안해 많은 양을 투여하거나, 척수에 주사를 통해 직접 투입한다. 간혹 초음파로 혈뇌장벽을 흔들어 틈을 벌리고 그 사이로 약물을 통과시키는 등의 방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안정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중항체는 혈뇌장벽 통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방법이다. 혈관내피세포에는 트랜스페린이라는 수용체가 있는데 혈뇌장벽에도 이 수용체가 있다. 이중항체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우선 트랜스페린에 결합하는 항체를 만든다. 트랜스페린은 결합한 물질을 혈뇌장벽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물질의 크기가 커도 통과가 가능하다. 그러니 트랜스페린에 결합하는 항체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등 문제가 되는 인자에 결합해 작용할 수 있는 물질을 붙인다. 이런 플랫폼 기술이 이중항체인데, 이렇게 만든 이중항체를 환자에게 투여하면 혈뇌장벽을 통과해 뇌까지 치료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7장에서는 이중항체 메커니즘을 이용해 혈뇌장벽을 통과하려는 시도를 살펴본다.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의 프레임 전환
8장에서는 신경면역(Neuroimmunology)을 다룬다. 그동안의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은, 문제가 되는 병리 인자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 것인지에 집중했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뇌 속 메커니즘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뇌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말고도 다른 병리 인자들이 있으며, 이들은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나를 막는다고 병이 치료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뇌 속 면역체계가 이런 병리 현상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뇌 속 면역세포로 미세아교세포가 있다. 미세아교세포는 뇌에만 있는 면역세포로 활발한 면역작용을 펼친다. 그리고 퇴행성 뇌질환 환자의 뇌 속을 살펴보면 미세아교세포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즉 무너진 신경면역 체계를 회복하거나, 신경면역의 메커니즘을 이용하면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8장에서는 뇌의 신경면역 체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몇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검토한다. 더불어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이 신경면역 관련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을 어떻게 시도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9장에서는 신경면역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흐름 가운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트렘2(triggering receptor expressed on myeloid cell 2, 이하 TREM2)를 다룬다. TREM2는 미세아교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세포막 수용체 단백질이다. TREM2가 발현되면 미세아교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덕분에 뇌의 손상된 곳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면역작용도 원활해진다. 또한 TREM2는 미세아교세포의 생존기간이 길어지게 해주며 증식을 돕는 작용도 한다. 즉 TREM2를 활용하면 뇌 속 면역 시스템의 활성을 높여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TREM2를 활용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그에 따른 연구 현황을 살핀다. 그리고 차분해질 것을 주문한다. TREM2를 이용하는 방법은 분명 혁신적이지만 아직 연구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미세아교세포는 그 자체로 동질적인 세포군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가 복잡하게 섞여 있다. 원하는 자극을 주려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는 면역 치료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주의해야 하는 지점으로, TREM2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10장 전략은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과 혁신적인 바이오테크들이 어떤 전략으로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는지 개괄한다. 1장부터 9장까지 과학에 무게를 두었다면, 10장은 전반적인 연구 현장의 흐름을 살펴본다. 11장 취재메모는 가벼운 사전이다. 과학적 개념, 메커니즘, 용어 가운데 본문에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따로 모았다. 저자는 비전문 독자라면 머리말과 10장, 11장을 먼저 읽고 1장으로 돌아가서 읽는 것도 추천한다.
대중에게 솔직하지 못한 과학 저널리즘은 과학도 저널리즘도 아니다
저자가 과학을 교양의 차원으로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을 넘어, 정보를 공개하며 토론과 소통을 시도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학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데 대중의 판단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명과학은 알츠하이머 병 고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문제는 쉽고 빠르게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며, 생명과학이 그 어렵고 느린 길을 잘 버텨낼 수 있게 대중이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와 해석은 대중의 꾸준하고 올바른 방향의 지지를 방해하기 쉽다. 기다려주어야 할 것들은 멈추게 만들고, 얼른 포기시켜야 할 것은 계속하게끔 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다. 과학 저널리즘의 목표는 대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소통하는 것이다. ‘대중은 이런 것 어려워서 모를 거야’가 아니라 ‘대중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이 옥석을 가려낼 거야’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공개해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게 격려하는 것. 저자가 이 책으로 해보려는 과학 저널리즘이다.
◆바이오스펙테이터 펴냄 / 148×210mm / 본문 426쪽 / 무선제본 / 2019.06.30. / 값 34,000원 / ISBN 979-11-960793-2-1 93470 / 구매 문의 : book@bi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