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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신약 Quick-Win전략⑥]임상개발 계획과 초기임상

입력 2020-04-16 16:11 수정 2020-04-16 16:11

한승훈 가톨릭의대 부교수·김세미 종근당 수석연구원

초기임상시험은 단순 통과수순 아냐..최적의 수행 및 활용 전략 마련해야

임상개발계획(clinical investigation plan)은 언제 수립해야 하는가?

여러차례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국내 대부분의 신약 파이프라인들은 전임상 단계(이 글에서 ‘단계’라 함은 본 시리즈의 네 번째 글인 '풍부한 비임상데이터 - 개발의 밑천' 참조)에 있으며, Quick-win/fast-fail 패러다임의 기본 구조 하에서도 보다 많은 후보물질들이 이러한 단계에 있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이 때 두 차례의 주요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데, 1)다양한 non-GLP 전임상 정보에 비추어 볼 때, 선택된 선도물질로 GLP 독성시험을 수행할 가치가 있는가?, 2)GLP 독성시험 결과와 기존의 지식을 종합할 때 임상 개발에 진입할 가치가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이는 GLP 독성시험 및 임상 개발이 이전에 수행된 각종 실험들에 비해 훨씬 큰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는 ‘개발의 설계도’(본 시리즈의 세 번째 글 '개발의 설계도' 참조)에 이러한 의사 결정 시 고려해야 할 요소와 후보 물질이 충족해야 하는 특성을 명시해 두고 이를 만족하는가에 대한 평가를 통해 개발 관련 의사를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 많은 개발사의 현실은 이렇게 체계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내∙외부 요인에 의해 이 단계에서 fast-fail하기보다는 1-2상 임상시험까지는 개발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적시에 의사결정 기회를 놓친다는 문제도 있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고민의 '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차피 임상까지는 개발을 한다는 전제를 하고, 개발사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임상개발계획(clinical investigation plan)입니다. 어느 '시점'부터 이것을 준비해야 할까요? 사실 임상개발계획은 '개발의 설계도'에 포함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는 개발의 초기에 확보하여야 하고, 이후 비임상개발을 통해 얻는 지식을 통해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관점에서 많은 개발사는 어느 정도 비임상 개발이 진행된 시점에서 이를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신약개발이 속도전임을 고려할 때 임상개발계획의 준비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마지노선은 위 1)에 해당하는 의사 결정 시점입니다. 만일 2)의 시점에 이 작업이 시작된다면, 다시 말해 임상 개발 진입을 결정하고 난 후에 비로소 임상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면 GLP 독성시험 결과가 모두 나온 이후에도 바로 IND(investigational new drug) 자료를 만들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임상개발계획을 뒷받침하는 전임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각종 실험을 추가로 수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GLP 독성시험 결과가 반드시 필요한 설계 요소(예를 들어 인체 투여 시작용량 등)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임상개발계획은 GLP 독성시험 완료 시점에 완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1)의 시점으로부터 준비작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임상개발계획 확보를 위해 허용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게 되고, 결국 충분한 고려와 검토 없이 계획을 수립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부실한 임상개발로 이어져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개발성공률을 저해하는 원인이 됩니다.

초기임상시험은 전체적인 임상개발계획의 틀 안에서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 많은 개발사는 임상개발전략 수립을 의뢰하는 시점이 1)의 시점보다 늦기도 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초기임상시험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개발사가 의뢰하는 내용은 전체적인 임상개발계획 수립이 아닌 인체 투여 시작 용량이나 증량 설계 등 1상시험 계획서를 작성해달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역시 신약개발을 순차적인 작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 번 강조해 왔지만, 신약 개발은 가장 효과적인 경로로 정해진 도착지(신약 허가)를 향해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에 늘 도착지를 생각하면서 개별 과정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냥 단계별로 하나씩 일을 처리해 가다 보면 도착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기에, 임상 진입 시점에서 비임상데이터만을 가지고 1상시험을 설계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시험이 다음 시험의 근거가 되어야 하고, 이들이 종합되어 신약 허가의 근거로 완성되어 가야 합니다.

'임상개발계획을 세운다' 함은 일종의 평가서 서식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단계에서 어느 정보를 얻어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정의하고, 특정 단계 별로 확보된 정보가 목표치에 맞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목표제품특성(또는 목표로 하는 label의 내용)이 정의되어 있다면 임상개발계획을 세움에 있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제품을 허가 받기 위해 필요한 확증적임상시험(3상)의 설계와 주요 endpoint입니다.

이는 해당 적응증에 대한 유사 제품의 개발 이력으로부터 알 수 있으며, 규제적 의사 결정에 핵심적 사항이므로 대부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는 어떤 용량/용법으로 시험을 진행하고, endpoint를 어느 정도의 대상자 수에서 어느 기간 동안 측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 정보는 이 전 단계의 개념증명(proof-of-concept)시험 등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험에서 후보물질의 임상적 효능의 크기 등도 파악 가능할 것이므로 확증적 임상시험 수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정보도 생성된다 할 수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개념증명시험을 잘 설계하는 것이 확증적임상시험과 관련된 다양한 의사 결정을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결과적으로 초기임상시험에서 이를 위한 충분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임상시험은 단순히 개념증명시험 이전에 거쳐야 하는 안전성 평가와 최대 내약 용량 확인 등의 형식적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임상개발의 토대가 되는 핵심적 정보를 얻는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얻은 정보가 평가서 서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갈 때에 비로소 올바른 개발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초기임상시험 설계 및 수행 전략

초기임상시험은 전임상단계의 지식을 근거로 하여, 개념증명시험의 설계를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는 시험이므로 개념증명시험 이후 라이센싱-아웃을 주요 개발 목표로 하는 국내 신약 개발사들에게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단계입니다.

초기임상시험 설계를 위해서는 목표제품특성, 임상개발계획, 활용 가능한 모든 비임상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평가서의 서식을 통해 전체적인 개발의 방향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 해당 서식의 일부 빈 칸이 채워진 임상 개발 전 단계에서 확보된 지식을 이용해 초기임상시험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목표로 하는 용법 하에서 효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최소 용량을 파악하고, NOAEL 등 인체 투여 개시 용량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함으로써 단회 및 반복 투여 증량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증량은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용량군 수와 용량군 별 대상자 수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1차적으로는 안전성에 대한 모니터링 계획을 세우고, 보다 가치 있는 정보로써 약동학 분석을 위한 채혈 시점 및 횟수 등을 정의합니다.

적응증에 따라 1상 단계에서 확인 가능한 약력학 바이오마커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적절한 기간 동안 관찰함으로써, 2상 임상시험 설계에 직접적인 근거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또한, 1상시험 단계에서 적응증을 탐색하고자 하는 항암제 등의 경우에는 'basket trial' 또는 'umbrella trial' 등의 설계와 함께 환자 선택 표지자(patient-selection marker)에 대한 고려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Quick-win/fast-fail 패러다임에서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실제적으로 임상 개발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가는 초기임상시험을 얼마나 빨리 수행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상 개발 후기로 갈수록 필요한 대상자 수와 시험기관 수 등이 증가하면서 정확한 타임라인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초기임상시험의 신속한 수행을 위해서는 이를 가능케 하는 설계가 1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증량 용량군 수를 최소화하는 방법도 있고, 충분히 예상 유효 용량보다 높은 용량까지 안전성이 확보되었다면, 이후 증량을 지속하면서 예상 유효 용량으로 2상을 개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적응적 설계(adaptive design)나 1/2상 병합설계 등을 이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집약적으로 도출하는 것도 좋은 접근일 수 있습니다. 대상자 모집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은 초기 임상시험에서도 필수적인 사항이며, 이는 환자 대상 초기임상시험에서 특히 문제가 됩니다. 다기관 연구에 대한 고려와 함께 모바일 앱 등을 이용한 환자 모집의 효용성이 입증되고 있는만큼 활용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통해 신속하게 대상자를 모집함으로써 불필요한 개발 지연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적절히 설계된 초기임상시험의 신속한 수행을 통해 후기임상시험 관련 의사 결정에 직접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면 후보물질의 가치는 급격하게 상승하게 됩니다. 초기임상시험에 대한 국내 개발사들의 이해와 수행 능력 제고를 통해 신약 개발 성공 사례가 보다 많이 창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