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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제약 “허가 취하한 약 재고 남았으니 더 팔게 해달라”

입력 2016-10-26 09:13 수정 2016-10-26 09:13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복지부에 행정심판ㆍ소송 제기..식약처 상대로도 전방위 소송전

대웅제약이 간판 의약품 ‘글리아티린’의 판권 상실 이후 손실 최소화를 위해 정부 상대로 전방위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상대로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활용하며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대웅제약 "글리아티린 급여목록 삭제 고시 무효" 행정심판ㆍ소송

24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최근 중앙행정심의위원회에 이달 말로 예정된 ‘글리아티린’의 보험급여 만료 고시를 무효화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대웅제약은 서울행정법원에도 같은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대웅제약이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한 이후 후속조치로 예고된 보험급여 취소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대웅제약의 오랜 간판 제품 ‘글리아티린’의 판권이 종근당으로 넘어가면서 정부와의 소송전도 시작됐다.

대웅제약은 지난 2000년부터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국내에서 완제의약품을 생산·판매했다. 글리아티린은 연간 6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대웅제약의 간판 제품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1월 대웅제약과 이탈파마코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 사용권한과 상표권은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종근당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판매 중이다.

대웅제약이 더 이상 ‘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지난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글리아티린의 보험급여를 10월말까지 유지하도록 결정했다. 기존에 유통한 물량은 10월말까지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는 의미다.

통상 제약사가 의약품의 허가를 취하하면 품질에 문제가 없는 경우 보험급여는 6개월 가량 지난 후에 취소된다. 허가가 취하됐더라도 해당 의약품을 복용 중인 환자들이 다른 약으로 변경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글리아티린의 보험급여 만료 기간이 임박하자 대웅제약은 복지부의 보험급여 취소 고시를 무효화해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대웅제약 측은 “유통기한, 재고량 등 개별적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일률적으로 보험급여 기간이 적용돼 시정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생산한 물량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재고 소진 때까지 보험급여를 적용해달라는 요구다.

처방의약품의 경우 건강 보험급여 적용 여부는 시장에서 존폐와 직결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의약품은 환자가 약값의 100%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처방을 기피할 수 밖에 없다. 글리아티린과 같이 제네릭 제품이 수십개 발매된 제품은 보험급여 제한은 사실상 시장 퇴출을 의미한다.

대웅제약이 글리아티린의 품목 허가를 취하했음에도 보험급여 기간 연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배경이다. 글리아티린의 허가는 없어졌지만 보험급여가 유지되고 있어 공식적인 시장 철수는 아니라는 게 대웅제약 측 판단이다.

대웅제약의 행정심판 청구에 중앙행정심의원회는 “심사청구사건의 재결이 있을 때까지 글리아티린의 보험급여를 유지해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의 반대 의견이 예상되지만 현재로서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끝날 때까지 글리아티린의 보험급여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대웅제약, 식약처 상대로도 소송전..'대조약 삭제 절차 부당'

대웅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대상으로 글리아티린과 관련된 행정에 반대하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 대웅제약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공고에 대해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에도 같은 내용의 행정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대웅제약 본사 전경

대조약은 복제약(제네릭) 허가를 위한 동등성시험을 진행할 때 비교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같은 성분 제품 중 대조약으로 지정된 제품과 비교해서 동등성을 입증해야만 제네릭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주로 최초 허가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식약처는 지난 5월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새롭게 대조약으로 지정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앞으로는 제네릭 허가를 받으려면 종근당글리아티린과 동등성을 비교해야 한다는 의미다. 글리아티린의 허가가 사라진 데 따른 후속조치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한 이유는 오리지널 제조업체 이탈파마코의 원료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사실상 원 개발사의 품목과 같다는 판단에서다.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보면 약사법에서 정한 신약,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 등을 대조약으로 지정한다. 신약이나 원개발사 품목의 허가가 취하되면 동일 성분 제품 중 전년도 청구수량이 가장 많은 제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있다.

대조약 지위 인정 여부를 놓고 제약사가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대조약은 제네릭 개발시 동등성을 비교하는 대상을 지정한 것일뿐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이 대조약 지위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오래 누리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약사법상 대조약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신약이나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주로 대조약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영업현장에서는 ‘대조약=오리지널 의약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대웅제약 측은 “글리아티린은 대조약 공고 삭제 시점에 시중에 충분히 유통되고 있었고 식약처는 대조약 지정 당시 사전통지나 의견조회 등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반박하고 있다.

글리아티린의 판권 상실 이후 허가가 사라졌음에도 오리지널 의약품 지위를 유지하면서 판매 시기를 연장할 목적으로 정부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며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사전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는 등 정부 행정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행정심판과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