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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 "6년만의 개정판"
입력 2023-10-31 15:11 수정 2023-11-01 08:07
바이오스펙테이터 서일 기자
2017년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한국의 신약개발 바이오테크를 중심으로』가 출간되었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기자들이 주축을 이룬, 바이오제약산업 분야 전문매체 <바이오스펙테이터>의 첫 책이었다. 창간 1주년을 맞이해 1년동안 한국의 신약개발 현장을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과학의 입장에서 해석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비전문 독자도 읽을 수 있게 풀어보려는 시도였다. 출간 이후 책은 바이오제약산업을 둘러싼 업계와 학계를 비롯해, 이 분야에 관심을 둔 비전문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생명과학 부교재로도 쓰이는 등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갓 2년이 지난 2019년, 9쇄를 마지막으로 절판을 결정했다.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신약개발 현장의 과학은 빠르게 업그레이드되었고, 좀더 긴 호흡의 기획으로 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다시 4년의 준비와 기획, 집필과 편집을 거쳐 2023년 개정2판을 출간했다. 원래도 적지않은 분량이었던 368페이지는 개정2판에서 648페이지로 늘어났다. 전세계의 신약개발 연구의 동향과 트렌드를 실었으며, 규제기관으로부터 시판허가를 얻는 데 성공한 74개 의약품의 개념입증을 다루었다. 또한 2023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이 예정되어 있는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논문을 비롯해 380여 개 데이터를 살펴보았으며, 바이오스펙테이터에 실은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기사의 내용을 다시 검증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초판이 한국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었다면, 개정2판은 그 사이에 일어난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고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책이다. 이렇게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신약개발 개념입증(PoC)을 중심으로』가 출간되었다.
개념입증
개념입증(Proof of Concept)은 과학이 산업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첫번째 산이자, 가장 넘기 힘든 산 가운데 하나다. 많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연구실에서 과학적 가설을 입증하는 것과, 통제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 현장에서 과학이 실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실험 환경을 통제하는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암세포를 없앴던 물질이라고 해도, 여러가지 변수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의료 현장에서 암 환자를 치료한다는 보장은 희박하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환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개념입증은 연구실 과학의 단계를 넘어, 임상현장에서 구체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내는 것이다. 신약개발에서 개념입증은 그래서 중요하고, 무거우며, 이제 본격적으로 손에 잡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 개정2판은 신약개발 개념입증(PoC)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신약개발을 위한 첨단의 과학을 다루되,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들을 골라냈다. 또한 신약개발과 관련있는 여러 분야의 과학을 들여다보되, 아이디어와 가설에서 시작해 개념입증 단계까지 끌고 온,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과 바이오테크들 그리고 한국의 바이오테크들의 여정도 살펴보았다.
이들의 여정은 자신의 연구는 물론 다른 이들의 연구를 들여다보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직면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과학에 대한 믿음으로 투자자와 시장과 스스로를 설득해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과학 앞에 지나치게 솔직하고 투박하며 우직한 사람들의 여정이었다. 덕분에 신약개발에서 전략이라는 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AI)’, ‘항체 치료제’, ‘면역 항암제’, ‘RNA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가능해진 개념’, ‘그리고 탐색’이라는 7개의 대주제 아래, 의료 AI(Artificial Intelligence in Medical Diagnosis), AI 신약개발(Artificial Intelligence Drug Discovery), 이중항체(Bispecific Antibody), 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CAR-T 세포치료제(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Therapy), mRNA(messenger RNA), RNAi & ASO(RNA interference & Antisense Oligonucleotide), 아데노연관바이러스 & 렌티바이러스(AAV[adeno-associatedvirus] & Lentivirus), 유전자 편집(Gene Editing), 비만(Obesity) 치료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on-alcoholic Steatohepatitis) 치료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치료제, 표적 단백질 분해(Targeted Protein Degradation),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DTx)의 17개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2023년 기준 신약개발로 가기 위한 개념입증의 단계를 넘었거나, 곧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주제들이다.
가장 뜨거운 주제..의료 AI, 항체 치료제, 면역 항암제
1부에서는 늘어가는 의료 수요와 부족해지는 의료 인력, 신약개발의 과학이 첨단화될수록 늘어나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에 직면한 신약개발 현장의 문제와, 더 많은 환자를 빨리 찾아 정확히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가고 있는 현장의 기회가 겹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의료 AI를 살펴보았다. 의료 AI를 투입해 영상의학과 의사 2명이 하던 일을 의사 1명이면 충분한 일로 바꿔낸 현장, 첨단신약 처방의 판단이 엇갈렸던 환자군을 좀더 명확하게 나눠주어 더 많은 환자에게 첨단 신약을 처방할 수 있게 돕는 의료 AI, 신약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개발비와 길었던 개발 기간을 AI로 줄여나가는 시도 등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삶의 모든 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AI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는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2부에서는 첨단 신약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손에 잡히는 치료제가 된 항체치료제의 다음 단계를 살펴본다. 오래된 아이디어였으나 개념입증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중항체. 개념을 입증하기까지 필요했던 기술 개발과정과, 개념이 입증되면서부터 열리기 시작한 신약으로서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중항체 개발현장을 담았다. 항체-약물접합체도 마찬가지다. 치료하려는 부위에 정확하게 결합하는 항체의약품의 장점과, 강한 독성으로 효과적 치료가 가능한 케미컬 의약품의 장점을 결합한 항체-약물 접합체도 개념입증까지 오래 걸렸다. 그런데 많은 항체-약물접합체 신약개발 연구자들이 예상했던 항체 개발이 아닌 약물 개발에서 최근 활로가 열렸고, 이는 선입견 없는 과학이 개념입증에서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바이오시밀러는 한국이 개념을 입증하고, 시장을 개척해, 분야를 확립한 성공적인 한국형 모델이었다. 치열해진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개념입증에 도전하고 있는 바이오테크들을 살펴본다.
암 치료에 있어 점점 상수가 되어가고 있는 면역항암제. 사람의 면역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개념입증에 성공한 미국 머크(Merck & Co.)의 '키트루다'는 항암제의 개념을 바꿔가고 있다. 더 이상 대안이 없다고 여겨졌던 혈액암 환자들을 치료해내고 있는 CAR-T 세포치료제도 마찬가지다. 3부 면역항암제에서는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가 어떻게 면역관문억제제와 CAR-T 세포치료제의 개념입증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따라가본다. 그리고 ‘감히 한국에서는 해볼 수 없는 도전’이라고 여기기도 했던 면역항암제 신약개발 분야에서, 한국의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가 어떤 개념입증을 더하는 방식으로 뛰어들 수 있을지 모색해본다.
가장 첨단의 영역..RNA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4부 RNA 치료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 세계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는 RNA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한 백신 개발로 기세가 한풀 꺾였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RNA 치료제는 개념입증에 성공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덕분(?)에 전격적으로 개념입증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RNA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신약개발에 개념입증을 위한 연구와 투자를 이어오고 있었기에, 코로나19라는 상황을 발생하자 개념입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백신에 이어 암 백신으로 개념입증의 폭을 넓혀가는 mRNA 치료제, 신약개발의 고비를 앞당겨 넘고 있는 RNAi & ASO 치료제 모두 개념입증을 위해 어떤 과학에 집중하고 있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살펴본다.
유전자에 생긴 문제로 인한 질병이라면 유전자를 고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치료제도 직관적이고 강력한 아이디어지만 역시나 개념입증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현장으로 가지 못하고 연구실에 남아야 한다. 5부에서는 유전자 치료제와 관련 있는 개념입증 사례를 점검한다. 치료제는 질병을 치료할 곳으로 정확하게 찾아가고, 찾아가는 길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도착한 치료 부위에서 의도한 대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유전자 치료제에서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데노연관바이러스와 렌티바이러스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유전자 치료제가 의약품으로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아데노연관바이러스와 렌티바이러스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이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개념입증의 노력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유전자 편집에서는 실제 유전자 치료에 필요한 유전자 가위, 염기편집 등의 개념을 살펴보고, 마찬가지로 다음 단계 개념입증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검토한다.
가능해진 개념..그리고 모색
비만,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알츠하이머병에 대해서는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 초판이 나올 당시만 해도 치료제의 개념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오면서 신약개발에 필요한 개념입증 가능성을 증명해가고 있다. 당뇨병을 비롯한 대사질환 신약개발에 활로까지 열고 있는 비만 치료제, 정확한 발병 원인도 마땅한 치료 대안도 없었던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개발 과정 내내 부침을 겪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등 6부에서는 이제는 신약개발이 좀더 가능해진 개념들을 살펴본다.
가능해진 개념이 있다면, 앞으로 꽤 가까운 미래에 가능해질 개념도 있을 것이다. 병리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는 특정 부위를 찾고 해당 부위에서 작용할 물질을 찾는 것이 아닌, 병리 단백질의 어느 곳에나 결합해 단백질 자체를 분해시켜버리는 표적 단백질 분해는 신약개발 연구자들이 몰두하고 있는 과제다. 장내 미생물 환경을 조절해 질병을 치료하는 마이크로바이옴, 디지털 기기와 IT 환경을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의 개념입증을 위한 가능성도 7부에서 탐색해본다.
◆ 지은이 김성민, 신창민 / 648쪽 / 140x215mm / 본문 컬러 / 2023.10.27. / 값 45,000원 /ISBN 979-11-91768-06-0 03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