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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은 고통, 시도만으로도 대단한 도전”

입력 2017-04-27 08:07 수정 2017-04-27 11:23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김선진 한미약품 R&D 본부장 "MD앤더슨 19년 임상연구노하우 활용, 신약 가치 극대화"

지난 2년간 한미약품은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120년 국내 제약산업 역사상 초유의 대형 기술수출을 연이어 성사시키며 한국 제약산업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부 수출 과제의 반환과 늑장 공시, 임상시험 지연 등의 악재를 겪으며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2017년 ‘신뢰 회복’을 선언했고, 최근에는 새롭게 추가한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을 전면 공개하는 등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제약사 근무 경험이 전무한 김선진 MD앤더슨 교수(56)를 연구개발(R&D) 본부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김선진 한미약품 부사장은 최근 경기 화성시 한미약품연구센터에서 만난 자리에서 “신약개발은 고통이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1·2·3상시험까지 험난한 과정을 넘어야 한다. 신약개발에 뛰어드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김선진 한미약품 부사장

지난달 한미약품의 R&D본부장 및 최고의료책임자(CMO, Chief Medical Officer)로 부임한 김 부사장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임상시험 전문가다. 비뇨기과 전문의인 김 부사장은 서울대 의과대학 출신으로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교수로 지내며 19년 동안 글로벌 제약사들이 수행한 수많은 임상시험에 직접 관여했다.

김 부사장이 신약개발을 고통으로 빗대 표현한 것은 한미약품이 지난해 겪은 악재 때문이기도 하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늑장 공시와 부작용 보고 지연 등으로 뭇매를 맞는 동안 제넨텍과 맺은 1조원 규모의 항암신약 기술수출 계약이 120년 한국 제약역사상 3위에 해당하는 규모라는 사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미약품이 계약금 규모로만 따져도 여전히 국내 제약 역사상 1~5위 기록을 모두 보유 중이라는 사실도 기억에서 멀어지는 듯한 분위기다. 한미약품이 지난 2년간 기술수출로 벌어들인 금액은 5400억원에 달한다.

김 부사장은 임상연구 전문가 입장에서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부 변수가 기존의 성과가 가려지는 현상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수많은 신약이 임상시험 과정에서 낙오하거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모두 예상이 가능한 변수 중 하나다. 신약 개발은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데 실패 사례가 발생하면 주변에서는 오히려 격려를 하지 신약 개발 업체를 비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항암제 ‘올리타’의 권리를 반환받을 때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의혹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약물 관련 사망 부작용을 지연 보고했다는 논란도 제기되면서 한미약품은 신뢰도에서도 흠집이 생기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사노피와의 계약 조건 변경으로 계약금 일부를 돌려줬고, 얀센에 기술수출한 신약은 임상시험이 지연되는 변수도 발생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임상 실패 또는 지연, 부작용 등과 같은 악재는 모두 예상이 가능한 변수에 포함되기 때문에 돌발 악재가 발생했더라도 지나치게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게 김 부사장의 견해다.

올리타와 같이 암 환자에 사용하는 항암제는 기존 약물로 치료가 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사망 환자가 발생하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변수인데 마치 약물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져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최악의 경우 기술수출한 신약 후보물질이 모두 상업화 단계 진입에 실패했더라도 제약사가 비난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한미약품의 기술수출을 둘러싼 의혹과 불신은 ‘생소함’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신약 기술 수출은 한미약품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기술 수출 소식에 지나치게 각광하고, 실패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가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부사장은 한미약품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보다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 부사장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노출되는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체계적인 위험 감소 전략(RRS, Risk Reduction Strategy)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시험에서 언제든지 약물과 관련된 이상반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이상반응 보고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감사원은 최근 올리타 임상시험 관련 감사 결과 한미약품이 스티븐스존스증후군(SJS) 부작용을 제대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임상시험대행기관이 즉시 보고단계라고 평가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늑장 보고’로 지목받은 것이다.

임상시험을 의뢰하는 스폰서 입장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환자의 의료차트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보건당국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등 체계적인 부작용을 점검하는 시스템이 가동됐으면 이 같은 리스크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올리타의 경쟁약물로 평가받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 는 더 많은 사망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로 아무런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다.

김 부사장은 스스로를 ‘임상이행연구’ 전문가라고 평가한다. 임상이행연구의 사전적 의미는 보편적 임상이행연구는 보편적 검증이 가능하고 재현성이 입증돼 임상적 적용이 가능한 기초과학 결과의 창출과정이라고 정의된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약물의 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한 연구다. MD앤더슨에서 김 부사장이 19년 동안 맡았던 업무가 임상이행연구다.

김 부사장은 “기초과학에서는 새로운 신약 물질을 발굴하고 그 결과를 유명 저널에 실리는 것을 큰 업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찾아낸 가능성과 상용화는 별개의 문제다. 임상이행연구를 통해 해당물질의 상업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일부 환자에서만 약효가 월등히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그 환자가 가진 특정 바이오마커를 찾아내 약물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굴하는 연구가 임상이행연구의 목적이다. 이미 판매 중인 약물도 임상이행연구를 통해 근거를 만들면 새로운 적응을 추가할 수도 있다.

한미약품이 미국 제약사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한 항암신약 ‘포지오티닙’이 대표적인 임상이행연구의 성과다. 김 부사장은 MD앤더슨에서 임상이행연구를 통해 포지오티닙이 유전자 엑손(exon) 20에 변이가 생긴 비소세포폐암 종양모델에서 유사 기전의 약물보다 100배 이상 효과가 나타난다는 잠재력을 발견하고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김 부사장은 “같은 데이터라도 연구자의 해석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임상이행연구를 활용해 과거에 실패한 약물도 다른 용도로 되살아나기도 한다”면서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임상이행연구가 활성화된지 오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열악하다”라고 평가했다.

김 부사장이 한미약품에 합류한 이유도 임상이행연구를 접목해 한미약품이 발굴한 신약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에서다. 연구자에서 처음으로 기업에 입사한 김 부사장은 “임상이행연구 시스템을 한국에 전수하고 싶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미약품의 신약 성공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김 사장은 “현재 모든 파이프라인을 살펴보는 단계”라면서도 “국내 기업 중에서는 한미약품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진단했다.

김 부사장의 부임 직후 한미약품은 전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신규 후보물질 9개를 추가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새롭게 발표했다. 신규 후보물질에는 바이오신약의 약효를 늘려주는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희귀질환 치료제와 북경한미약품이 개발한 플랫폼 기술 ‘펜탐바디’가 적용된 면역표적항암 이중항체 프로젝트 등이 포함됐다.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은 총 4개가 전임상진행 중인 신약 후보물질로 추가됐다.

김 부사장은 “19년간 MD앤더슨에서 수행했던 임상이행연구 시스템을 한미약품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이미 그 작업은 시작했다. 회사의 신약개발 의지가 높아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