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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생존 매뉴얼 『초심자를 위한 임상시험 A to Z』

입력 2024-02-15 09:12 수정 2024-02-15 14:43

바이오스펙테이터 서일 기자

현장이 궁금한 준비생 &.신입을 가르쳐야 하는 중간관리자 & 임상업무가 궁금한 모든 이를 위한 입문서

#장면 1. 수요

2022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임상시험 가운데 한국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이 다섯 번째로 많다.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진행되는 도시 역시 서울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 그에 따른 초대형 병원의 집중 등은 임상시험을 수행하기 좋은 조건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임상시험, 임상개발 분야의 성장에 따른 인력 수요는 늘고 있다.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바이오제약업계 매출 규모는 2015년 19조원에서 2022년 29조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약 9만4500명이었던 종사자 수는 25%가량 늘어나 약 12만명이 됐다. 한국의 산업 전체 평균 고용증가율과 비교해 약 9배 높은 수치다. 바이오제약 업계에서 일하는 12만명 가운데 임상시험, 임상개발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인력 숫자는 약 2만명으로, 정부는 2024년까지 임상시험 및 임상개발 업계 종사자 수를 3만5000명까지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장면 2. 공급

먹고사는 일 그 자체가 문제였던 세상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지가 문제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를 반영하듯 대학들은 특정 산업의 부침에 따라 특정 학과를 만들고 없앤다. 신약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대학에는 바이오제약에 관련된 학과가 늘어났다. 자연과학 계열, 의약계열 학과 수는 20여년 동안 약 1900개에서 약 2400개로 늘어났는데, 학과의 이름도 다양해졌다. 생물학과나 생명과학과로 불렸던 과들이 생명바이오학과, 의약바이오학과, 바이오로직스학과, 의생명공학과, 응용생명과학과 등으로 이름을 바꾸거나 나뉘었다. 그리고 이 전공을 택하면 많은 경우 신약개발 산업에 필요한 내용을 커리큘럼으로 구성된 교육을 받게 된다.

#장면 3. 미스 매칭

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산업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 둘 사이가 이어져야 하는 현장의 분위기는 모호하다.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 신규 인력의 채용도 늘어야 하지만, 기업에서는 여전히 경력직 채용을 선호한다. 채용과 동시에 업무에 투입하려는 기업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다리 놓기

이 책은 수요와 공급, 사람과 산업 사이에 다리를 놓고,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다. 『초심자를 위한 임상시험 A to Z』의 저자 서경희는 임상시험, 임상개발 업계에서 20여년 동안 신약개발과 임상시험 프로젝트를 수행한 전문가다. 그는 한국에서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임상시험이라는 것이 막 시도되던 시기에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저자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인력을 직접 뽑기 위해 200명 이상 면접을 봤고, 70명 이상을 채용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 임상개발 업계의 ‘수요와 공급 미스 매칭’을 목격했다. 저자는 사람과 산업이 서로를 잘 찾아가고 찾아낼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저자가 면접장에서 만난 대표적인 미스 매칭의 패턴은 취업준비생들이 ‘자신이 지원한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으며, 그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일 안에서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쓰는지를 정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 먼저 용어와 개념을 정리했다.

『초심자를 위한 임상시험 A to Z』의 ‘1부 키워드로 알아보는 임상시험, 임상개발’에서는 임상시험과 임상개발 업계에서 쓰고 있는 주요 키워드 55개를 설명하고,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154개 전문용어를 정리했다. 예를 들어 ‘기전’이나 ‘메커니즘’이라는 모호했던 개념 대신 ‘Mode Of Action’이라는 정확한 용어와 개념을 이 책으로 알 수 있다. [본문 22쪽, ‘작용기전(Mode Of Action, Mechanism Of Action, MOA)’ 참조]

‘2부 단계별로 알아보는 임상시험, 임상개발’에서는 임상시험, 임상개발 업무의 전체 구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전체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겉표지 안쪽에 커다란 표를 그렸다. 표에는 임상시험을 준비, 진행, 종료 단계로 나누어 정리했고, 다양한 임상시험 업무 담당자들이 각각 어떤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는지도 보여준다. 임상시험의 시작 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진행되는 업무를 시간 순서대로 그린 지도(map)다.

CRA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임상시험, 임상개발이라고 하면 많은 경우 임상시험 모니터요원(Clinical Research Associate, 이하 CRA)을 떠올린다. CRA라고 하면, 임상시험 실시기관(병원)에서 임상시험에 지원한 임상시험 대상자들을 상대로 약을 투여하고 결과를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CRA는 훨씬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CRA의 진짜 업무는 아래와 같다.

임상시험 준비 단계에서 CRA는 임상시험에 사용될 문서들을 검토하고, 임상시험 실시기관(병원)과 임상시험 수탁기관(Clinical Research Oraganization, 이하 CRO)을 선정한다. 준비가 끝나면 CRA는 임상시험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모니터링(Monitoring) 업무를 시작한다. 이후 임상시험이 끝나 모니터링 업무가 종료되면, CRA가 마무리 업무를 진행한다. 임상시험 결과보고서(Clinical Study Report, CSR)를 검토하고, 임상시험에 사용된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확인해 남은 분량을 처리하며, 임상시험 과정에서 만들어진 여러가지 문서들을 검토하고 보관상태를 확인하는 업무들이다.

CRA는 임상시험, 임상개발 분야의 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현장 CRA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3부에서 임상시험, 임상개발 분야 현장에서 어떤 직무들이 어떤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독자는 ‘3부 1장 Clinical Research Associate(CRA)’에서 구체적인 CRA의 업무 루틴과, CRA가 업무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실제 상황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본문 75쪽, ‘임상시험 진행 단계에 따른 CRA 업무(온사이트 CRA)’ 참조]

RA, QAA, STAT, PVA, MW

임상시험 과정에서는 CRA 업무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크게는 허가(Regulatroy Affairs) 업무,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업무, 통계(Biostatistics) 업무, 약물감시(Pharmacovigilance) 업무, 메디컬 라이팅(Medical Writing) 업무가 함께 돌아간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서 임상시험 준비단계와 진행단계를 살펴보자.

먼저 메디컬 라이터(Medical Writer, MW)가 임상시험 계획서(Protocol)를 작성한다. 임상시험 계획서가 완성되면 허가 담당자(Regulatory Associate, 이하 RA)는 임상시험 계획 승인(Invetigational New Drug, IND) 서류를 준비한다. RA가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와 같은 규제기관에 서류를 제출하며, 임상시험이 승인되기까지 기관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진다. 규제기관에서 임상시험을 허가하면 CRA가 임상시험 운영을 시작하는데, CRA가 임상시험을 모니터링하는 동안에 임상시험 품질보증 담당자(Quality Assurance Associate, 이하 QAA)는 임상시험과 임상시험 실시기관을 따로 점검하고, 통계 담당자(Biostatistician, 이하 STAT)는 임상시험에 대한 적절한 통계방법을 디자인하며, 약물감시 담당자(Pharmacovigilane Associate, PVA)가 임상시험용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을 계속 추적하고 관찰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3부 직무별로 알아보는 임상시험, 임상개발’에서 CRA에 더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RA, QAA, STAT, PVA, MW의 5개 임상시험 직무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했다.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매뉴얼

신약개발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일이다. 그리고 임상시험, 임상개발은 이 미지의 영역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 없었던 후보물질을,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해보는 과정이기에, 현장에서는 여러 돌발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산업과 일에 대한 이해는 이와 같은 위험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임상시험, 임상개발 실무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돌발상황을 미리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신입 CRA는 충분한 교육없이 실무 현장에 던져지고, RA는 허가 담당자라는 이유로 여러 다른 부서로부터 허가 규정에 대한 예상치 못한 질문 공세를 받는다. QAA는 점검 업무의 성격상 타 부서로부터 불만어린 눈빛을 견뎌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STAT은 전문적인 통계 데이터를 통계 지식이 얕은 부서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을 만나는 등, 신입사원들이 실무를 하면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책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상황을 보여주었다면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임상시험, 임상개발 현장에서 초심자가 만나게 될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안내한다. 예를 들어 CRA는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rea National Enterprise for Clinical Trials, KoNECT)과 한국임상개발연구회(KoreaSociety for Clinical Development, KSCD)에서 제공하고 있는 임상시험 CRA 신규자 과정, 중급, 고급 과정과 임상시험 프로젝트 관리 초급, 중급과정을 이수하는 것으로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채울 수 있다. RA는 질문이 들어온 내용을 참고문헌과 관련 규정으로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외부에 자문을 구하는 방법으로 답변을 준비하면 된다. QAA는 점검업무가 타 부서와 기업을 돕는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친근한 태도를 취한다면, 부서 사이에 발생하는 오해를 풀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STAT은 그림과 도표를 활용하면 복잡한 통계 데이터를 다른 부서원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각 업무 부서의 현장 실무경험이 있는 이들의 경험담을 인터뷰해 책에 담았다. 생화학과 통계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 STAT 실무자는 STAT 직무를 시작하게 된 자신만의 경험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게된 정보를 공유한다. 업무 역량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기르는 데 도움을 얻었던 책과 교육 코스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본문 122쪽 ‘STAT 실무자 이야기 – 내게 찾아온 기회’ 참조]

초심자에게는 빠른 적응, 관리자에게는 효과적인 교육

저자는 ‘부록’으로 취업준비생과 신입사원이 꼭 알고 있어야 할 팁들도 정리했다. 또한 사회생활에 필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부록1’에 취업 준비에 필요한 팁과 함께,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신입사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정리해두었다. 신입사원이 공부해야 할 최소한의 규정 리스트부터, 이메일 작성과 소통요령, 효율적인 시간관리의 중요성과 과업 수행시간 계획의 예시를 부록으로 정리했다. 임상시험 업무에 있어 문서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임상시험에 필요한 기본문서 리스트도 수록했다. 여기에 더해 ‘부록2’로 임상개발, 임상시험 관련 용어와 공식적인 정의를 정리해 실었다.

현장이 정신없이 돌아가다 보면, 중간 관리자는 신규 인력 교육을 놓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더 많은 인력을 더 빨리 현장에 투입하려면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입문교육(Onboarding Training, 이하 온보딩 트레이닝)이다. 이때 중간 관리자는 신입사원에게 GCP(Good Clinical Practice)라는 임상시험관리 기준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행하는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읽히지만, 업무를 갓 시작한 신입사원이 전문적인 지침 문서들을 꼼꼼히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실무도 해야 하는데, 신입사원 교육까지 맡게 된 중간 관리자에게 도움의 손길이 될 수 있다. 이 책으로 신입사원은 기초 개념을 익히고 임상시험의 여러 업무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중간 관리자는 신입사원에 대한 교육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작은 책으로 한국의 임상시험, 임상개발 업계의 수요와 공급, 사람과 산업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스매칭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이같은 시도가 계속 이어지면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의 임상시험과 임상개발 산업은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을 기대하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서경희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펴냄 / 140*215mm / 200쪽 / 2024.02.02. / 값 16,000원 / ISBN 979-11-91768-07-7 03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