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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암 조기발견 열망과 클론성조혈증의 이해

입력 2018-10-19 13:26 수정 2018-10-25 18:23

고영일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클론성조혈증의 이해-①] 발견 5년..①혈액암의 전구단계 ②심혈관계질환 사망 예측지표 가능성

▲고영일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지놈오피니언 공동창업자)

우리나라에서 암은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됐다. 암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이고, 두번째는 조기 발견이다. 실제 많은 독자들은 건강검진센터에서 다양한 암 조기검진 검사를 선택하여 검진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위내시경은 위암의 조기검진을 위해, 대장내시경은 대장암의 조기검진을 위해 사용된다. 안타깝게도 암 중에서도 두려움이 큰 혈액암에 대한 조기검진 방법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아 답답함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체 연구방법론의 발달로 혈액암의 전구세포에 해당하는 클론성조혈증(Clonal hematopoiesis of indeterminate potential, CHIP)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흥미로운 다양한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클론성조혈증은 혈액암 발병의 원발세포인 조혈모세포로 암에 이르지는 않은 초기 돌연변이가 발생한 상태를 일컫는다.

① 혈액암의 전구단계로 이해하면서 첫번째 출발

클론성조혈증은 조혈모세포에 일부 돌연변이가 발생한 상태다. 세포에 여러 가지 돌연변이가 누적되면 암으로 발전하는데, 클론성조혈증은 돌연변이가 누적되기 전 한두 개의 돌연변이만 혈액세포에 발생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손상을 받으면 돌연변이가 발생하게 되며 혈액세포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는 방사선, 항암제 등이 있다. 클론성조혈증은 혈액검사를 통해 발견 가능한데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며[1]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들(이를 테면 유방암이나 대장암에 대하여 수술 후 재발방지항암화학요법을 받은 환자)에서 그 빈도가 높다[2].

클론성조혈증은 소수의 돌연변이만 있는 상태로 암세포는 아니지만, 클론성조혈증 세포에 추가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혈액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클론성조혈증을 보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혈액암의 발병이 10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발병확률은 1년에 1% 수준이다[3].

▲클론성 조혈증(Clonal hematopoiesis of indeterminate potential, CHIP) 모식도 (그림: 지놈오피니언)

클론성조혈증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주로 DNMT3A, TET2, ASXL2와 같은 후성유전체적 기능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발생한다. 이렇게 후성유전체적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기능이 돌연변이에 의하여 망가지면, 2차적인 돌연변이가 누적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 이러한 2차적 돌연변이의 누적에 의해 악성림프종, 백혈병 등 다양한 혈액암이 발생한다[4].

요약하면, 클론성조혈증은 1)조혈모세포에 2)소수의 돌연변이가 발생한 '암전구단계 세포 (premalignant cell)'다. 혈액암과 클론성조혈증 사이의 관계는 대장암과 대장 용종의 관계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② 심혈관계질환 사망 예측지표로 새로운 발견

클론성조혈증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던 연구진은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클론성조혈증을 보유한 사람들은 혈액암이 발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이에 암과 관련없는 사망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졌고 클론성조혈증 보유자는 엉뚱하게도 심혈관질환으로 사망이 높았다. 놀랍게도 이후 동물실험에서 클론성조혈증에서 흔히 발견되는 TET2 유전자 돌연변이가 동맥경화증을 유발함이 확인됐다. 이제 클론성조혈증은 혈액계 뿐 아니라 순환기계 연구자들 및 의료진의 관심을 받는 현상이 됐다. 이렇게 클론성조혈증이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기전은 TET2의 경우 클론성조혈증 세포가 대식세포 등 세포들의 사이토카인 분비를 비정상적으로 조절해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2]. 그러나 아직 TET2 이외의 다른 유전변이에 의한 클론성조혈증이 심혈관질환을 일으키고 사망을 증가시키는 기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전방위적인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지표로는 잘 예측되지 않는 젊은 연령에서 심혈관질환 발생을 클론성조혈증의 존재유무를 통해 예측할 수 있다. 클론성조혈증을 젊은 층의 건강검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다. 현재는 심혈관질환의 발병에 콜레스테롤, 당뇨, 고혈압 등의 지표가 주로 사용되는데 클론성조혈증은 이들 지표와 독립적인 인자이므로 클론성조혈증을 결합해 심혈관질환의 발병을 보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클론성조혈증 검사는 본인의 타고난(Germline) 요인이 아닌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요인(Acquired somatic mutation)에 대한 검사다. 명확한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있어, 현재 쟁점이 많은 Germline 유전변이 검사와는 다른 맥락에서 건강검진에 과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클론성 조혈증의 다양한 임상적 의미 (그림: 지놈오피니언)

클론성조혈증은 혈액암의 전구세포로 생각했으나 예기치 못한 혈액암과 상관없는 사망률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다[5]. 심혈관질환이 주된 사망률 증가 원인이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클론성조혈증과 관계된 사망률 증가가 있기 때문에 건강검진에서의 빅데이터 누적을 통해 그 의미를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관찰해 보면 어쩌면 클론성조혈증은 건강검진에서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몸이 망가진 상태'를 반영하는 일반적인 지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③ 클론성조혈증 이해를 통해 사망률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

클론성조혈증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혈계의 일부 세포가 변형된 상태다. 만약 이렇게 변형된 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면 정말 암과 심혈관질환 발생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 몇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변형된 유전변이를 표적할 수 있는 표적치료제의 개발이다. 두번째는 면역세포가 변형된 세포를 없앨 수 있도록 면역을 조절하는 방법의 개발이다. 아직은 이러한 방법들이 개발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클론성조혈증 세포의 특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소수의 유전변이만이 클론성조혈증 세포에 존재하고, 클론성조혈증 세포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혈액 전체 세포의 5% 미만이기 때문에, single cell sequencing과 같은 기술을 통해 클론성조혈증 세포의 특성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실제 필자는 single cell RNA sequencing 데이터를 생산해 클론성조혈증 세포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클론성조혈증은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반도체공장 근로자들의 백혈병 발생은 한동안 우리 사회의 산업재해 관련 화두였다. 실제 필자도 외래에서 백혈병이 발생한 반도체공장 근로자들을 진료하고 있고, 이러한 환자들을 마음 아프게 진료하면서 실제 어느 정도의 인과관계가 있을지 궁금했으나 알아낼 방법이 없어 답답했었다. 산업재해는 전통적으로 역학조사를 기반으로 그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전체학의 발달로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이 추가로 가능해지고 있다.

만약 혈액암 발병 고위험군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이를 테면 반도체공장 근로자, 방사성동위원소 취급자, 중금속 및 방사성오염 노출 피해자 등) 일반인에 비해 높은 클론성조혈증 보유빈도를 보인다면, 이는 환경과 혈액암간의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 클론성조혈증의 존재가 확립된 만큼 이런 사회적인 문제도 좀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혀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클론성조혈증의 존재가 밝혀지고 연구되기 시작한지 이제 5년 남짓이 되었다. 클론성조혈증은 돌연변이의 숫자가 적고, 세포의 비율이 적어, 연구적인 접근에 제한이 있으나 임상적으로는 분명 다양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틀림없다. 클론성조혈증에 대한 이러한 소개를 통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 임상적 의미와의 관계를 밝히고 치료적인 접근이 가능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1. Giulio Genovese et al., “Clonal Hematopoiesis and Blood-Cancer Risk Inferred from Blood DNA Sequence”, N Engl J Med 2014; 371:2477-2487

2. Nancy K Gillis et al., "Clonal haemopoiesis and therapy-related myeloid malignancies in elderly patients: a proof-of-concept,case-control study", Lancet Oncol. 2017 Jan;18(1):112-121

3. Siddhartha Jaiswal et al, "Age-related clonal hematopoiesis associated with adverse outcomes", N Engl J Med. 2014 Dec 25;371(26):2488-98

4. David P. Steensma et al., "Clonal hematopoiesis of indeterminate potential and its distinction from myelodysplastic syndromes", Blood. 2015 Jul 2;126(1):9-16

5. Benjamin L. Ebert and Peter Libby, "Clonal Hematopoiesis Confers Predisposition to Both Cardiovascular Disease and Cancer: A Newly Recognized Link Between Two Major Killers", Ann Intern Med. 2018 Jul 17;169(2):11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