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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석의 신약연구史]'염증(inflammation)' 이해의 시작

입력 2020-01-02 14:12 수정 2020-01-02 14:12

남궁석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

[염증과의 싸움①]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약 '아스피린'의 탄생

의약학 관련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염증(inflammation)이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한 단어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염증은 특정한 질병에 따르는 부수적인 증상 정도로 생각되곤 한다. 그리고 ‘소염진통제’라는 이름으로 일반 의약품(OTC: Over the counter)으로 구할 수 있는 이부프로펜(Ibuprofen)이나 아스피린(Aspirin) 등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익숙한 ‘염증’이라는 단어에 비해서 정확히 염증이라는 현상이 어떻게 유발되며, 여기에 얼마나 복잡한 면역반응이 연관되어 있는지는 이해가 부족하다. 또한 염증과 관련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물의 세계 시장 규모가 2020년 기준으로 1061억 달러 수준으로[1] 이 규모는 항암치료제의 시장 규모보다 조금 더 클 정도로 염증과 관련된 약물의 시장이 크다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2018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약물 리스트를 잘 살펴보면 염증 치료제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2]. 가령 2018년 단일 약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한 휴미라(Humira, 성분명 아달리무맙 Adalimumab)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써, 이 약물은 TNF-alpha를 억제하는 항체 의약품으로 TNF-alpha에 의한 염증 반응을 억제해 주는 기전을 가진다. 이외에도 엔브렐(Enbrel, 성분명 Etanercept), 레미케이드(Remicade, 성분명 Infliximab)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 의약품 역시 같이 TNF-alpha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NSAIDs)는 우리가 일반의약품으로 흔히 접하는 수많은 소염진통제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염증의 생물학적인 원인과 연구의 역사, 그리고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여러가지 의학적 수단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현재의 의약품 시장에서 큰 위치를 차지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항염증제들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크게 보탬이 될 것이다. 앞으로 본 연재에서는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수많은 항염증제들의 역사와. 이들이 탄생하기 위하여 어떤 연구 과정이 필요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그 이전에 인류가 어떻게 ‘염증’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염증 연구의 역사

염증에 대한 인식은 고대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존재했다. 흔히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1550년의 파피루스에서는 여러 질병에서 나타나는 염증으로 생각되는 증상에 대한 기술이 나와 있으며, 여기에 대한 치료법이 기술되어 있다[3-5]. 염증이 초래하는 증상 중의 하나인 부종(edema)라는 단어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BC 370)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히포크라테스는 염증을 조직이 손상된 후 치유되는 과정의 하나로 보았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아울루스 코르넬르우스 켈수스(Aulus Cornelius Celsus, BC 25-AD 50)는 그의 저서 ‘의학에 관하여 De Medicina)에서 염증의 증상을 다음의 4가지로 요약하였다[6].

▲붉어짐(Redness, 라틴어: Calor) ▲부위의 열(Heat, 라틴어: Rubor) ▲붓기(Swelling, 라틴어: Tumor) ▲고통(Pain, 라틴어: Dolor)

켈수스 시절에는 이러한 염증의 증상이 왜 기인하는지를 당연히 몰랐으나, 오늘날에는 처음 3가지의 증상, 즉 붉어짐, 부위의 열은 염증 부위의 혈관 확장에서 일어나고, 붓기의 경우 혈관에서의 체액의 투과 증가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결국 혈관에 의해서 일어나는 증상임을 잘 알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고대 의학의 염증에 대한 개념이 엄밀한 과학적 연구에 의해서 유래되기보다는 직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염증에 대한 개념 정립은 후대의 염증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염증에 대한 이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다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세기 중반, 세포가 생물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기능적 단위라는 세포 이론(Cell Theory)이 정립되고, 이에 기반하여 질병의 원인을 세포 수준에서 찾아보려는 세포병리학(Cellular Pathology)의 등장한 이후였다[5]. 세포병리학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루돌프 피르호(Rudolph Virchow, 1821-1902)는 모든 질병은 정상 세포의 이상에서 일어난다고 간주하고, 염증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피르호는 현미경 관찰을 통하여 켈수스가 정의한 염증의 증상이 혈관 확장과 혈관에서의 체엑의 투과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하였고, 염증의 증상에 ‘조직의 기능 상실’(loss of function, “functio laesa”)을 추가하였다. 피르호는 염증이 혈관에서 새어나온 영양분을 간질세포(interstitial cells)가 과다하게 섭취하여 병적으로 증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피르호의 제자인 율리우스 프리드리히 콘헤임(Julius Friedrich Cohnheim, 1839-1884)는 심한 염증에서 발견되는 고름(pus)의 정체가 혈액 중의 죽은 백혈구 세포라는 것을 알아내어 염증과 혈관 내 백혈구 세포와의 관계를 처음 입증하였다.

한편 러시아의 병리학자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 1845-1916)는 불가사리의 유충의 발생과정을 연구하던 도중, 상처가 있는 부분으로 세포가 이동하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이 세포들이 침입한 병원균을 잡아먹는 포식작용(Phagocytosis)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8년 메치니코프는 이러한 포식작용과 염증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염증작용은 포식세포(phagocytes)를 상처가 난 영역으로 보내기 위하여 발생하는 일련의 현상으로써, 혈관을 통하여 포식세포가 이동하기 위하여 혈관이 확장되며, 이로 인하여 염증의 특징적인 현상인 혈관 확장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염증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면서 염증이라는 현상이 단순히 세포 자체의 이상, 혹은 외부 상처로 침입하는 외래 병원체에 대항하는 면역 반응과 같이 단순히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알려지게 되었다. 가령 직접적인 상처나 병원체의 감염이 없어도 염증을 유발하는 신호물질에 의해서 염증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인체의 면역계에 의해서 외부의 항원 혹은 병원체의 침입을 받은 세포가 아닌 정상세포가 공격받아 일어나는 자가면역질환에 의해서도 염증 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됨으로써, ‘염증’이라고 통칭되는 증상은 극히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반응을 포괄적으로 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염증의 원인에 대한 현대적인 설명이 나오기까지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야 했지만, 인간은 염증이라는 존재를 최초로 인식했던 기원전부터 염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러한 고대부터 내려온 염증에 대한 대책은 19세기 말 최초의 소염제 역할을 하는 물질의 발견으로 이어지게 된다.

[남궁석의 신약연구史]'염증(inflammation)' 이해의 시작

▲그림 1. 염증에 대한 이해의 발전의 기여자들. (왼쪽부터) BC 1550년의 최초의 염증에 대한 기록인 에버스 파피루스 (Ebers Papyrus). 염증을 조직이 손상된 후 치유되는 과정의 하나로 본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 BC 460 – BC 370), 염증의 증상을 붉어짐, 열, 붓기, 고통의 4가지로 요약한 로마의 박물학자 아울루스 코르넬르우스 켈수스 (Aulus Cornelius Celsus, BC 25 - AD 50), 염증의 증상 중 상당수가 혈관 확장과 체액 투과의 증가라는 것을 밝히고 염증의 증상에 조직 기능 상실을 추가한 루돌프 피르호 (Rudolf Virchow, 1821-1902), 염증이 외부 병원체를 잡아먹는 포식세포 (phagocytes)를 상처가 난 영역으로 보내기 위하여 발생하는 일련의 현상으로 설명한 엘리 메치니코프 (Elie Metchnikoff, 1845-1916)

살리신과 살리실산

버드나무에 통증과 열을 내리는 물질, 즉 오늘날의 항염증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의 잎과 나무껍질에 통증을 완화시키는 물질이 들어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물론 화학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던 당시에는 버드나무에 들어있는 어떤 성분이 항염증 효과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18세기 영국의 목사였던 에드워드 스톤(Edward Stone, 1702-1768)은 버드나무 껍질에 통증을 완화시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였다. 그는 약 1파운드의 버드나무 껍질을 말려 가루로 만든 후, 이를 약 50명에게 복용시켜 통증과 열을 내리는 효능이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결과를 1763년 영국 왕립학회지(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에 보고하였다[7]. 그렇다면 스톤이 발견한 버드나무 껍질 유래의 물질은 어떤 화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1829년 독일의 화학자 요한 뷰흐너(Johan Buchner)는 버드나무 추출물에서 살리신(salicin)이라는 물질을 정제하였고, 이탈리아의 화학자 라파엘르 피리아(Raffaele Piria)는 살리신이 당과 방향족 화합물이 결합된 물질이고, 당과 방향족 화합물을 분리하여 방향족 화합물만 결정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이 물질을 살리실산(Salicylic acid)이라고 이름붙였다[8].

이렇게 식물 유래에서 분리된 살리신이나 살리실산 역시 통증과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었으므로 이를 약으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스코틀랜드의 의사인 토마스 존 맥라간(Thomas John MacLagan, 1838-1903)은 류마치스 환자에 살리신을 투여하여 열과 관절 염증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9]. 그러나 이를 약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살리신이나 살리실산은 버드나무 등의 식물 재료로부터 추출해야만 했고, 많은 양의 원재료부터 극히 작은 양의 살리신/살리실산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저렴하게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1860년 독일의 화학자인 헤르만 콜베(Herman Kolbe, 1818-1884)에 의해서 페놀로부터 살리실산을 합성하는 과정(콜베-슈미트 합성 Kolbe-Schimitt synthesis)이 개발되면서 천연물에 비해서 훨씬 값싸게 살리실산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10].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살리실산은 매우 쓴 맛을 지니며, 위경련을 일으키는 문제로 많은 의사들은 사용을 꺼렸다. 살리실산의 부작용을 낮추면서 그 효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스피린의 탄생

19세기 후반 독일에서는 인공 염료 합성을 기폭제로 화학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863년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 1825-1880)에 의해서 설립된 염료 회사인 바이엘사(Friedrich Bayer & Company)는 자신들의 인공 염료 합성 기술을 기반으로 화학 합성을 통하여 약리적인 효과를 가지는 약물을 개발하려고 하였다. 바이엘에서 근무하던 화학자인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 1868- 1946)과 아서 아이첸그룬(Arthur Eichengrün, 1867-1949)은 1897년 부작용이 덜한 살리실산의 유도체를 개발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호프만은 살리실산과 무수초산(Acetic Anhydride)를 반응시켜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를 만들었고, 이렇게 만든 아세틸살리실산은 살리실산에 비해서 부작용이 덜하면서도 살리실산이 가지는 통증 완화와 열을 내리는 효과를 가지는 물질이었다[11]. 사실 아세틸살리실산 자체는 1853년 프랑스 화학자인 찰스 프레데릭 게하르트(Charles Frederic Gerhardt, 1816-1856)에 의해서 이미 합성된 물질이었지만 바이엘의 화학자들은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실제로 이 물질이 약리활성을 가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셈이다.

펠릭스 호프만은 아세틸살리실산 외에도 기존에 알려진 물질인 모르핀(morphine) 유도체를 만들어 중독성이 없는 기침약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는 모르핀을 아세틸화한 물질을 얻었고 이 물질에는 헤로인(Heroin)이라는 이름으로 처방 없는 일반의약품으로 1898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이엘사의 기대와는 달리 헤로인은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환각성 약물이었고, 헤로인의 판매는 1930년대부터 금지되었다.

1899년 바이엘사는 아세틸살리실산을 ‘아스피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아스피린’이라는 단어는 진통제, 해열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원래 바이엘사의 상표였던 고유명사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실산’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처럼 되어 버렸는데, 물론 아스피린 자체의 인기에도 원인이 있지만 다른 원인도 존재한다. 아스피린이 판매되기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연합국에서 적대국이었던 독일의 자산은 몰수되었고, 1918년 미국과 캐나다의 바이엘사의 자산은 경매에 의해서 스털링제약(Sterling Drug)에 넘어갔고, 그 이후부터 수많은 회사에 의해서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으로 아세틸살리신산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1950년 기네스북(the Guiness Book of World Records)는 아스피린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으로 수록하였다. 그러나 아스피린이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진통제/해열제가 되었지만 아스피린이 어떤 기전에 의해서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아스피린이 등장한 후 약 70년 동안 미지수였다.

다음 연재에서는 아스피린의 작용 기전이 발견되는 과정과, 아스피린의 경쟁자가 되는 다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NSAIDs)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의 과정을 알아볼 것이다.

[남궁석의 신약연구史]'염증(inflammation)' 이해의 시작

▲그림 2. 아스피린의 탄생. 기원전부터 버드나무(Willow, 학명 Salix) 추출물은 통증 완화와 해열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으나 그 유효 성분이 살리신 (Salicin)이라는 물질이라는 것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알려지게 되었다. 살리신을 분해하여 나온 살리실산 (Salicyclic acid)는 통증 완화와 해열 효과를 주었으나 매우 쓴 맛과 위경련을 유발하는 관계로 약으로 널리 사용하기 어려웠다. 19세기 말 독일의 바이엘사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 (Felix Hoffmann, 1868- 1946)은 살리실산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살리실산에 무수초산 (Acetic anhydride)를 반응시켜 아세틸살리실산 (Acetylsalicylic acid)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는 후에 ‘아스피린’ (Aspirin)으로 알려지는 약물이 되었다. 한편 펠릭스 호프만은 모르핀 (Morphine)을 아세틸화하여 헤로인 (Heroin)이라는 물질을 합성하였고 바이엘은 헤로인을 감기약으로 일반의약품으로 판매하였으나, 헤로인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니는 환각제였고, 헤로인의 판매는 1930년대에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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