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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업체도 OK’..제약업계, 실속형 제휴 확산 왜?

입력 2016-07-25 06:57 수정 2016-07-25 10:08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국내사간 영업 제휴 활발..신 성장동력 발굴 몸부림

제약업계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들이 사업 제휴를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 다국적제약사-국내제약사, 국내제약사-바이오벤처 등 양사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해주는 제휴에 치중했지만 최근에는 유사한 강점을 보유한 업체들도 손 잡는 실속형 제휴가 많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국내업체간 제휴를 통해 시장에서 시너지를 내는 경우도 속속 등장했다.

◇국내 경쟁사간 사업 제휴 확대..'시너지 조합만 있다면 누구와도 제휴'

22일 업계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은 안국약품과 당뇨병치료제 ‘가드렛’과 ‘가드메트’에 대한 공동 프로모션 협약을 체결했다고 21일 밝혔다. 가드렛은 ‘가드렛정’은 ‘DPP-4’ 효소를 억제시켜 인슐린 분비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약물이다. JW중외제약이 일본 산와화학연구소로부터 도입한 신약이다. JW중외제약이 직접 국내 임상2상, 3상시험을 수행한 이후 시판허가를 받았다.

이번 협약으로 JW중외제약과 안국약품은 이달 말부터 국내 30병상 이하의 의원을 대상으로 공동 판매를 추진한다. 종합병원 등 대형 병원 영업은 JW중외제약이 전담한다.

국내제약사가 허가받은 신약을 또 다른 국내제약사와 공동으로 판매하는 제휴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기존 제휴는 다국적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을 국내제약사와 영업을 같이 하는 사례가 많았다. 다국적제약사가 강점을 가진 종합병원을 공략하고, 국내제약사는 의원급 영업을 담당하며 시너지를 기대하는 방식이다. 가드렛과 같은 DPP-4 억제 약물의 경우 MSD,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베링거인겔하임, 다케다 등 다국적제약사 내놓은 제품 모두 종근당, 한미약품, 일동제약, 유한양행, 제일약품 등 국내업체가 영업에 가세했다.

‘경쟁업체도 OK’..제약업계, 실속형 제휴 확산 왜?

▲국내 발매 DPP-4 억제계열 당뇨약 판매 현황

사실 유사한 역량을 보유한 국내제약사들은 시너지를 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제휴를 주저해왔다.

국내제약사 한 영업본부장은 “국내제약사들은 대체적으로 의원급 영업에 강점을 갖고 있어 두 제약사가 뭉쳐도 매출 확대 효과는 크지 않을 뿐더러 영업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국내업체들이 공동으로 영업을 진행할 만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많지 않았다. 국내업체간 공동 판매를 진행했다가 영업기밀이 노출되거나 제휴 업체의 리베이트 영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특히 "남 좋은 일 시켜줄 수 있다”는 불신도 팽배했다.

이런 이유로 국내제약사들간 영업 제휴를 맺을 때는 영업 전략을 보다 세분화한다. 이번 JW중외제약과 안국약품의 당뇨약 공동판매의 경우 의원급 거래처를 명확히 구분했다. 의원급 거래처 중 기존에 JW중외제약이 거래를 진행 중이거나 사전 영업이 진행 중인 1000여개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은 안국약품이 영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종합병원은 JW중외제약이 전담하면서 양사간 중복 분야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또 양사는 정기적으로 신규 거래처 발굴 현황을 공유하고 영업 전략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제약사들의 제휴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쉽지 않은 여건에서 시너지를 낼만한 조합이 있다면 기존의 경쟁 관계도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지난 2012년 LG생명과학은 개발 중이던 B형간염치료제 '베시포비어'의 판권을 일동제약에 넘겼다. 베시포비어는 LG생명과학이 자체개발한 제품으로 임상2상시험까지 완료됐다. 일동제약이 임상3상부터 허가·생산·판매 등을 담당키로 했다.

막바지 개발 단계만을 남겨둔 신약을 경쟁사에 넘겨준 첫 사례로 기록됐다. LG생명과학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전념하자”는 정일재 사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주력 사업영역이 아닌 신약 판권을 과감하게 팔았다. 일동제약은 전사적으로 베시포비어 개발에 나서며 자체 개발 첫 신약의 배출을 눈 앞에 두게 됐다. 일동제약은 LG생명과학의 첫 신약 '팩티브'의 판매도 진행 중이다.

일양약품은 지난 2012년 말 자체개발 백혈병치료제 ‘슈펙트’의 영업 판권을 대웅제약에 넘기고 국내 영업에 손을 뗐다. 슈펙트가 사용되는 종합병원 영업력이 취약하다는 판단에 내린 과감한 결정이다.

보령제약은 자체개발한 고혈압신약 ‘카나브’에 이뇨제를 섞은 고혈압복합제 ‘라코르’의 판권을 동화약품에 이전했고 2013년부터 동화약품이 판매를 진행 중이다.

◇국내사간 영업 제휴로 매출 급증 효과 속속 등장..제휴 활발 전망

업계에서는 향후 국내제약사간 사업 제휴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국내제약사들의 제휴로 뚜렷한 효과를 거두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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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명과학 '제미글로'

LG생명과학의 당뇨치료제 ‘제미글로’의 약진이 대표적이다. LG생명과학은 지난해까지 다국적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와 제미글로를 공동으로 판매해오다 올해부터 대웅제약과 손 잡았다.

대웅제약은 지난해까지 팔았던 같은 계열의 당뇨약 ‘자누비아’의 판권을 종근당에 뺏기자 LG생명과학에 러브콜을 했다. 현재까지 결과는 대성공이다. 제미글로는 상반기에만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한 237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LG생명과학 창립 이후 최대 매출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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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제약 '고덱스'

셀트리온제약의 간판제품 ‘고덱스’는 한미약품의 영업력 보강으로 매출이 고공비행 중이다. 의약품 조사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고덱스의 올해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은 176억원으로 전년보다 35.5% 증가했다.

셀트리온제약의 전신인 한서제약이 2000년 개발한 ‘고덱스’는 간세포 손상의 간접적 지표인 SGPT(트란스아미나제)가 상승된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그동안 셀트리온제약이 독자적으로 팔아오다 지난해 1월부터 한미약품과 손잡고 공동 판매를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제약이 홀로 판매하는 동안 고덱스의 매출은 2012년 207억원, 2013년 216억원, 2014년 227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266억원으로 껑충 뛴데 이어 올해에도 매출 신기록을 쓸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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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엠지제약 '레일라'

한국피엠지제약이 개발한 천연물신약 ‘레일라’도 안국약품의 영업력이 가세하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레일라의 상반기 처방실적은 108억원으로 전년대비 39.2% 늘었다.

2012년 발매된 레일라는 당귀, 목과, 방풍 등 한약재로 구성된 천연물신약으로 골관절증 치료 용도로 사용된다. 한국피엠지제약은 바이오업체 바이로메드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개발했다.

한국피엠지제약은 지난 2014년 안국약품을 영업 파트너로 선정했다. 한국피엠지제약은 종합병원과 일부 의원시장에서 레일라를 판매하고, 안국약품은 의원을 중심으로 판매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2013년 56억원이었던 레일라의 처방실적은 안국약품과의 공동 판매가 시작된 2014년 10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00억원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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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글로'·'고덱스'·'레일라' 원외 처방실적 추이(단위: 억원, 자료: 유비스트)

국내제약사들간 제휴가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녹십자와 LG생명과학은 의약품 판매·유통을 비롯한 포괄적 업무 협약을 맺고 양사가 보유한 모든 제품에 대한 마케팅·판매·유통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양사는 연구개발(R&D) 부분까지 제휴 영역을 확대, 제약사간 새로운 협력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제휴 관계도 사실상 청산 수순이다. 녹십자가 개발한 천연물신약 ‘신바로’도 LG생명과학과 공동판매를 진행하다 접은 상태다.

보령제약이 개발하고 동화약품이 판매 중인 고혈압복합제 ‘라코르’는 2022년까지 15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세웠지만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은 25억원에 불과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간 사업 제휴로 영업력만 보강된다고 매출이 증가하지는 않는다"면서 "상호 제휴를 검토할 단계부터 각자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전략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