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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아웃포스트』 누가 한국서 신약을 만들고 있는가

입력 2025-10-24 09:12 수정 2025-10-24 11:39

바이오스펙테이터 서일 기자

한국제약바이오협회(KPBMA) 80주년 공동기획 '아웃포스트'..평범한 사람들의 '버티는 시간'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한국의 신약개발 현장 이야기..자기 자리에서 신약개발이라는 싸움을 매일 펼치며 전진하고 있는 '보병 같은' 사람들

[새책]『아웃포스트』 누가 한국서 신약을 만들고 있는가

"어디로 가시나요?"

"신약을 개발하러 갑니다."

"어떻게 가시나요?"

이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모두 달랐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통찰과 실천이 담겨있었다. 이 책은 그 하나하나에 대한 기록이다.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은 50여년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첨단 산업군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한 곳이 됐다.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선진국들의 산업구조 개편, 냉전체제 아래에서 지정학적 이점 등 다양한 구조적인 이유들이 제시된다. 그러나 구조는 우리에게만 주어진 조건이 아니기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정말로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한국이 철강을 생산하겠다고 했을 때, 고속도로를 놓고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배를 짓고 반도체를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 진지하게 믿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그런데 그 말을 정말 믿고, 아주 오랫동안 매달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시간과 노력과 돈을 쓰며, 그럼에도 매일 실패를 경험하면서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키다가 어느 날 성공에 도착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전초기지(아웃포스트)에서 지루하게 버티며 끊임없이 전투를 펼쳤던 평범한 병사들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전초기지는 국내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신약개발도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한국이 신약을 개발하고, 이 신약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서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과 경쟁하고, 제약바이오를 한국의 차세대 핵심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매일 시간과 노력과 돈을 쓰면서, 그리고 매일 실패를 경험하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아웃포스트-누가 한국에서 신약을 만들고 있는가』는 제약기업과 바이오텍 연구소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넘게 신약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바로 우리 현장 연구자들에 대한 인터뷰다.

사실 한국은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기준으로, 40개의 신약을 개발한 나라다. 40개의 신약 가운데는 전세계 시장에 진출해 신약으로 판매되는 것들도 있지만 한국에서만 처방되는 것들도 있고, 큰 매출을 올리며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들도 있지만 더 이상 팔지 않는 것들도 있다. 존재감이 모호할 수 있지만 존재 자체는 확실한 한국의 신약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당시 막내 연구자였던 이들은, 이제 제약기업과 바이오텍의 연구소장이 돼서 신약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최전방 아웃포스트를 지켜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블록버스터 신약 자리에 올라갈 물건을 개발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껏 어떻게 싸워왔고 앞으로 어떻게 싸우려는지에 대한 이야기. 과연 이들은 마침내 신약을 개발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현장에 있을 것이다. 다음은 한국 신약개발의 아웃포스트에서 수많은 패배를 경험하고, 전우를 잃는 과정에서 생존이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하지만 꾸역꾸역 조금씩 전진해온 보병들이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 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본문 29쪽, 임00= (해방되고 한국전쟁까지 거치고 난 그때) 약을 구하러 온 어떤 손님이 있었겠죠. 아마도 약국에는 그 약이 없었을 겁니다. 약을 구하면 꼭 좀 알려달라고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봤겠죠. 그 약을 먹으면 환자는 어쩌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 뒷모습 때문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닙니다. 미군 부대로, 일본으로, 여기저기 약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립니다. 약을 만들자. 결정에 결정을 더하다 보니 신약을 개발하기로 하는 결정까지 내리는 거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지만.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본문 61쪽, 최00= 한국에서 우리 연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좀 더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진짜 경쟁할 수 있고, 실제로 경쟁하고 있는데 선입견이 끼는 것이죠. 비만 치료제 시장은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다 가져간 것 아니냐는 시선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특허, 데이터로 경쟁하고 있거든요. 정작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은 인정을 하는데, 한국에서 인정을 안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기세를 죽이는 건데… 안타깝지만 결국 우리가 신약으로 개발하면 분위기는 달라지겠죠.

▲본문 99, 100쪽, 이00= 사람이 문제입니다. 20년 동안 버둥거리면서 노하우를 찾았는데, 넘겨줄 사람이 있어야죠. 그래야 그 다음도 있으니까요.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노하우라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태도나 습관 같은 것들도 포함되고, 생각이나 신념 같은 것들도 포함되죠.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정리해놓은 연구노트가 다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연구노트를 읽는 것만으로 기술이 이전되지 않아요.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것이 있습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의학, 약학과 직접 관계가 있죠. 의학과 약학은 경험 학문입니다. 환자를 많이 본 의사가 최고가 되는 것이고, 오랫동안 약을 개발해본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 따라서 신약개발을 해보는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이 많아야 하거든요. 그건 제약기업의 신약개발 연구소여야 하겠죠.

▲본문 166쪽, 167쪽, 김00= 맷집이 있어야겠죠. 잘 때리기만 하는 권투 선수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거든요. 링에 올라가서 한 대도 안 맞을 수는 없어요. 경쟁하는 상대도 훈련을 열심히 한 권투 선수잖아요. 그래서 맷집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제대로 때릴 수 있을 때까지는, 맞아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맷집. 신약개발을 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실패하죠. 두들겨 맞기도 하고, 심지어 넘어집니다. 그럼 얼른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잡아야죠. 안타깝지만 맷집을 키우는 방법은, 많이 맞아보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실패를 많이 해서,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몸이 익히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본문 186쪽, 191쪽, 송00= 신약개발 연구자가 의약품 시장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모릅니다. 의약품 시장을 모르면 그나마 다행이죠. 다른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연구자는 자기 연구실에서 자기 연구만 열심히 하면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 않거든요. 이런 이유로 신약이 많이 안 나온다고 봅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는 임상시험, 규제기관의 승인이나 허가, 의약품의 제조, 마케팅까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각각의 분야에는 전문가들이 있고, 정말로 매우 전문적인 것까지 다 알기란 불가능하죠. 그럼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알고 있어야 해요.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수적인 말의 뜻은 '현실적'이라는 뜻이지 '비관적'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나 비관적인 사실과 싸우게 됩니다. 싸우려면 무기가 필요한데 그 무기가 바로 시장에 대한 이해, 데이터 등입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뽑아내야 해요. 그렇게 비관적인 시선을 물리쳐야 현실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본문 228쪽, 이00= 프로야구에서 엄청난 기량을 가진 한두 명의 선수로 시즌에서 우승하는 경우는 없어요. 결국 팀워크가 중요하죠. 없어 보일지언정 볼을 골라서 1루로 나가고, 희생번트를 대서 주자를 2루로 보내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도루를 하고, 희생 플라이를 쳐서 홈으로 불러들여야 이길 수 있습니다. 엄청난 홈런타자로 멋지게 경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팬들이 그때 그때 열광할지는 모르지만 가을 야구에는 가지 못할 겁니다. 신약이 안나오는 겁니다.

▲본문 310쪽, 311쪽, 이00= 우리가 어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여러 가지 기준들을 세우잖아요. 전기차를 만들고 우주선을 개발하는 기업들 가운데 어떤 기업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해야 할까요? 첨단 기술에 예민하고, 그 기술을 활용해 공격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지가 중요할 겁니다. 제약기업은 조금 다를 겁니다. 물론 제약기업도 첨단 기술에 예민하고, 그 기술을 활용해 공격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제약기업이 얼마나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가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잖아요. ‘정말 병을 고쳐주고 싶다’와 같은 마음, ‘부작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와 같은 마음이 없으면 신약개발은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운 좋게 한두 번 성공할 수는 있어도, 성공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본문 324쪽, 오00= 한국 제약산업은 역사가 꽤 오래되었죠. 하지만 글로벌 수준을 따라가려면 갈 길이 멉니다. 지금은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주로 제네릭, 개량신약을 개발합니다. 다행히 기술력이 꽤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서 한국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충분하고, 개발도상국에 수출도 합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계속 성장하기는 어렵죠.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결국 남의 약을 가져와서 파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니까요.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성장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네릭, 개량신약으로 한국 시장에서 경쟁을 벌여서는 성장이 어렵죠. 생존하려면 신약을 개발해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신약을 하지 않으면 한국 제약기업들은 생존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347쪽, 348쪽, 황00= 제약기업이나 바이오텍도 절실해야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기업에 절실함이라는 말은 추상적일 수 있어요. 환자와 의료진은 구체적으로 절실합니다. 신약이 나와야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기업이나 바이오텍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을 개발하면 큰 보상이 있지만, 큰 보상이 없어도 고통스럽거나 죽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약기업이나 바이오텍은 신약을 개발하지 못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어요. 그런데 기업이 물건을 가지고 시장에 걸어 들어가면 구체적으로 절실해집니다. 신약개발 R&D의 리스크가 크다고 하지만 망할 정도의 리스크는 아닙니다. 엎어져도 다시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진짜 리스크는 시장에 나갔을 때 나타나거든요. 임상3상까지 가서 승인을 받고, 영업 조직을 갖추고, 마케팅 비용을 들여서 시장에 나갔는데 엎어지면 정말 망할 수 있어요. 제약기업이나 바이오텍의 절실함은 이 대목에서 나올 수도 있다고 봐요.

[새책]『아웃포스트』 누가 한국서 신약을 만들고 있는가

◆김성민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펴냄 / 128*188mm / 420쪽 / 2025.10.15. / 값 30,000원 / ISBN 979-11-91768-11-4 03510 / 구매 문의 : book@bi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