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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R&D 싱크탱크의 일침..“연구자·기업들, 달라져야 한다”
입력 2017-06-20 07:07 수정 2017-06-21 13:37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일부 연구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만이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우수한 기술이 상업적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기업들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무대에서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구자와 기업들은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진실성을 갖고 협력해야 합니다.”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최수진 신산업MD(49)의 일침이다.
최 MD의 조언은 국내에는 수많은 바이오텍이 있고, 저마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다고 자평하는데, 왜 아직 국내 바이오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최 MD는 "글로벌 제약사보다 뒤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격차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연구진들과 기업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면서도 "다만 일부 연구자들과 기업, 정부의 그릇된 관행이 연구개발 속도를 늦추거나 성공 확률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은 미래성장동력 창출, 산업기술 R&D 정책발굴 및 전략수립, 투자방향 제시 및 예산 조정을 하는 기관이다. 산업기술 R&D 체질개선과 역량제고를 통한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을 목표로 사실상 한국 산업기술 R&D의 최정예 싱크탱크(Think-tank) 역할을 한다.
R&D전략기획단은 산업융합, 신산업, 주력산업, 에너지산업 등 4개의 산업으로 분리·운영된다. 4명의 MD(Managing Director)가 모든 산업의 R&D 전략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최수진 신산업MD는 바이오(헬스케어), 의료기기, 지식서비스, 가상현실 등 분야에 대한 R&D 전략을 수립한다.
대웅제약 총괄연구본부장 출신인 최수진 MD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바이오PD를 거쳐 지난해 신산업MD로 선임됐다. 제약업계와 정부에서 20여년간 두루 경험을 쌓은 ‘바이오 R&D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 위치한 R&D전략기획단에서 만난 최수진 MD는 “한국 제약·바이오 R&D 수준이 짧은 기간에 급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전제하면서도 “글로벌 무대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려면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자, 기업, 정부 모두 그동안의 그릇된 관행을 고쳐야만 지금까지 보여준 가능성을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언이다.
최수진 MD는 "일부 연구자와 바이오벤처 경영자들은 바이오 생태계 협력에 노력하지 않는다.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작심발언을 했다.
최근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이 확산되면서 산학협력 시도가 확산되는 분위기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 초기 협력 단계일뿐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은 실정이다. 연구자와 기업들이 지나치게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탓에 정작 적기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지적이다.
최 MD는 “정부에서 일을 해보니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자신이 진행 중인 과제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자세 때문에 전체 판이 커지지 않는다. 각각의 연구자들이 보유 중인 과제를 공개하면서 시너지를 낼 만한 조합을 찾고, 서로의 기술에 대해 충분한 토론의 장이 열리면 상업성을 높이는 기술 발굴은 빨라질 수 있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 있는 최신 기술을 보유한 상황에서 임상시험 전문가와 손 잡고 신속하게 임상 단계에 진입, 해당 물질의 상업성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유사한 과제를 개발한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연구에 착수하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 개발을 앞당길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발굴한 과제에 인생을 걸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관적인 과대평가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 MD는 “타이밍도 경쟁력의 중요한 척도다. 기술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검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연구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기술 가치를 끌어올린 이후 협력 단계나 기술이전으로 넘어가는 것이 유리할 수 있지만 전체 산업 측면에서 보면 초기 연구 단계에서부터 외부로부터 객관적인 검증을 받는 것이 추후 상업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기술력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도 시장에서는 글로벌기업들에 맥을 못 추는 원인을 연구 초기단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견해에 기반한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발간한 ‘2017년 창의산업기술 R&BD 전략'을 보면 한국 바이오 분야의 기술 수준은 미국에 비해 75.7% 수준이며 기술 격차는 2.4년 차이가 난다. 최 MD는 “한국 기업이나 연구자들이 등록한 특허는 전 세계 5위권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성과를 한 건도 내지 못한 탓에 상업적 성과는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다. 국내 연구자들이나 기업들이 보유한 잠재력은 크지만 정작 상업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 MD는 “기술의 우수성과 상업적 성공은 비례하지 않는다. 기술력과 상업화는 별개의 문제다. 특허는 상업화 이후 방어 전략에 불과할 뿐이다. 특허 기술을 마치 상업적 성공의 보증수표로 생각하면 안된다”면서 “훌륭한 아이디어가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 기술과 기술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협력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기업들의 연구개발 문화도 개선이 시급하다. 최 MD는 대웅제약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20년 가량 근무하며 총괄연구본부장까지 역임했다.
최 MD는 “전반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돼있다. 해외에서는 실패해도 상을 주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실패한 담당자를 문책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기업 문화는 실무진들의 무책임으로 이어진다.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문책받지 않으려고 실패를 은폐하면 정작 우수 기술에 투입할 수 있는 기회마저 봉쇄당하는 악순환이 펼쳐질 수 있다.
최 MD는 “제약·바이오산업은 성과 도출까지 오래 걸리는 특성상 실무진 입장에선 중간 과정에서 수많은 무책임의 유혹이 도사린다. 기업 오너나 CEO들은 실패를 최대한 빨리 인정하는 실무진에게 문책 대신 인센티브를 주고,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과제를 무리하게 끌고 가는 직원은 가혹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 제약사들이 유사 분야에 동시에 뛰어드는 백화점식 경영도 개선이 시급한 문제로 지목된다. 최 MD는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제네릭, 개량신약 뿐만 아니라 신약 분야에서도 유행을 좇아가는 분위기가 많았다. 기업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하는데, 남들이 성과를 내면 뒤늦게 따라하는 풍토가 비효율적인 투자를 야기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R&D 지원 실태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최 MD는 “정부는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대해 기업이나 연구자들이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를 공유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기업과 연구자들의 성과에 편승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지원을 하는 사례가 간혹 보인다. 이런 풍토가 반복되면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 지원금은 '눈먼돈'이라는 인식에 R&D 지원금을 따내려는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정부가 R&D 지원 과제를 선정할때 지나치게 공정성을 따지다 보니 전문성과 창의성이 부족한 과제에 대해 지원이 이뤄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가뜩이나 부족한 전문가 인재풀에서 공정한 심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서울대 출신 교수가 개발한 기술이라는 이유로 심사위원에서 서울대 출신을 배제하면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고민이 노출된다.
최 MD는 연구자나 기업들, 정부는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업들은 실제로 제품을 내놓고 매출로 평가받아야 한다.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상업화 단계에 도달하더라도 상업적 성공 여부가 중요하다. 주가 부양이 목표가 돼서도 안된다”고 했다. 이어 “한국 바이오산업은 우수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바이오산업이 알을 깨고 더 성장하려면 기업과 연구자, 정부가 진실성을 갖고 일해야 한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