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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자의 W]한미, 여전히 '글로벌 스타'.."냉정 유지할 때"
입력 2016-09-30 14:46 수정 2016-10-04 10:56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7건의 초대형 신약 기술 수출, 1건의 권리 반환.
한미약품이 한국 의약품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 국내 제약 역사상 3번째로 큰 1조원 규모의 기술 수출 소식을 전하더니,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30일 오전에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수출한 ‘올무티닙’의 권한이 반환됐다는 악재가 나왔다. 지난 3월 게르드 스텔 베링거인겔하임 종양의학부 부사장이 한국을 찾아 올무티닙에 대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라며 극찬한지 6개월만에 나온 뉴스다.
벌써부터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성과에 거품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한 제약기업이 낸 성과에 너무 많은 이들이 막연한 기대감을 키운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LG생명과학, 부광약품, 일양약품, 동화약품 등 많은 제약사들이 신약을 수출한 이후 이번 한미약품처럼 판권을 돌려받은 경험이 있다.
사실 글로벌제약사들의 신약 개발과정에서 중도 포기는 흔한 뉴스 중 하나다. 미국바이오협회가 지난 6월 발행한 임상단계별 성공률(Clinical Development Success Rates 2006~2015)에 따르면 모든 의약품 후보물질의 임상1상부터 품목승인까지의 성공률은 9.6%에 그쳤다. 임상 1상 성공률과 2상 성공률은 각각 63.2%, 30.7%로 조사됐다. 임상3상 성공률은 58.1%로 나타났다.
올무티닙은 임상2상시험이 진행 중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률 30.7%를 극복하지 못한 셈이 됐다. 오히려 임상2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어려운 도전이었다는 얘기다. 베링거인겔하임의 경쟁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에 견줘 경쟁력이 떨어진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온다.
베링거인겔하임의 개발 포기로 올무티닙이 글로벌 신약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렇다고 한미약품이 지난 1년간 구축한 위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올무티닙의 기술 수출 성과를 제외하더라도 한미약품은 약 8조원 규모의 신약 수출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29일 제넨텍과 체결한 표적항암제는 개발에 뛰어든지 5~6년에 불과한 신약 후보물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새로운 수출 성과에 대한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다.
한미약품은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도 ‘스타 플레이어’의 입지를 다졌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11월 사노피와 체결한 약 5조원 규모의 당뇨약 3건에 대한 기술수출만 보더라도 한미약품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
미국의 제약·바이오 컨설팅 업체 디파인드 헬스(DefinedHealth)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체결된 계약 중 다이니폰 스미모토(Dainippon Sumitomo)가 에디슨(Edison)과 체결한 ‘EPI-589’의 기술 이전 계약이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계약 규모는 총 42억3800만달러(약 4조6600억원)이고 계약금은 1800만달러(약 200억원) 수준이다.
한미약품의 사노피와의 계약 규모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미약품의 계약이 의약품 3종에 대한 기술이전이라는 것을 감안해 품목당 계약규모를 1조6094억원로 계산해도 2013년 글로벌 기술 계약 중 전체 4위에 해당한다.
한미약품은 지금까지 기술 수출에 대한 계약금과 마일스톤으로 5632억원을 받았는데, 이마저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과다. 보령제약의 고혈압신약 '카나브'가 41개국에 수출했다고 호평을 받지만 지금까지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금액은 200억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미약품의 성과가 하나씩 나오면서 많은 이들은 국내 제약 바이오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다른 제조업이 동반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마치 의약품 산업이 한국 경제의 희망인 것처럼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신약 임상시험 승인 소식이라도 들리는 바이오벤처는 이내 주가가 폭등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마치 임상시험에 돌입하면 글로벌 성공을 예약한 듯 온갖 설레발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미약품의 수출 성과를 떼어 놓고 보면 국내 기업들의 신약 개발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지난해부터 한미약품을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수출 계약을 따낸 업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제약사들은 아직도 높은 내수 시장 의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국적제약사들의 신약 판매 대행에 열을 올린다. 대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의약품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정부도 과도한 기대감을 부추긴 게 아닌지 우려된다. 한미약품의 성과에 꽂힌 정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의약품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약품의 수출 성과는 어느새 정부의 성과로 둔갑했다. 한미약품 연구소에 얼굴을 비춘 장관만 해도 한 두 명이 아니다.
보건당국은 최근 국내 최초로 허가받은 글로벌 신약은 약가를 우대해주겠다는 새로운 지원책을 발표했다. 한미약품의 ‘올리타(올무티닙의 국내 상품명)’를 겨냥한 ‘맞춤형 지원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정부의 의지만큼은 견고해 보였다. 현재 올리타는 보건당국과의 약가협상을 기다리고 있는데, 글로벌 진출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당국이 어떤 기준으로 약가를 부여할지 궁금해졌다. 냉정해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