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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청개구리' 제약사들의 이상한 의기투합

입력 2017-02-03 07:18 수정 2017-02-06 10:14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정부의 1회용 점안제 용기 개선 권고에 수익성 악화 우려 눈치..불합리한 규제 도입 부채질

국내에는 의약품 포장용기의 크기를 규제하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의약품 생산·수입량의 10% 이상을 작은 포장으로 공급을 강제하는 ‘의약품 소량포장단위 공급에 관한 규정’이다. 예를 들어 알약의 경우 연간 생산량 10분의 1 이상은 30정 이하 병 포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운영하는 특이한 제도다.

지난 2006년부터 11년째 시행 중인 소량포장 규제는 다소 엉뚱한 이유로 도입됐다. 일부 약국에서 제약사들에 소량포장 단위 공급을 요구하는데, 제약사들이 자꾸만 대단위 포장을 들여놓는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통상 동네 의료기관과 같은 건물에 있는 동네약국에서는 보관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작은 포장을 선호한다. 주변 병·의원의 처방이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데 대량으로 보관하면 자칫 사용기한이 만료돼 버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면 제약사들은 약국에서 소량포장을 요구하면 모두 공급해주고 있다는 주장을 내비치며 약국과 제약사간 이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제약사들은 추후 약국에서 공급된 약이 소진되지 않으면 반품을 받아준다는 이유도 들었다.

물론 정부의 소량포장 의무 생산 도입 움직임에 제약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자율적으로 시장에 맡기면 되는데 정부가 포장단위까지 규제하는 것은 지나친 개입이라는 불만이 거셌다.

하지만 소량포장 의무 공급 규제는 시행이 됐고, 제약사들은 매년 행정처분 위험에 노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98개 품목(2013년 40개, 2014년 22개, 2015년 30개, 2016년 2개)이 소량포장 공급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제조업무정지 1개월 처분을 받았다. 대부분 제약사들이 생산 예측을 잘못 해서 의무 생산 분량 10%를 맞추지 못한 탓이다. 여하튼 제약업계 종사자들 모두 이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 소량포장 공급 규정과 같은 이상한 규제가 도입될 조짐이다. 식약처가 1회용 점안제의 규격이나 뚜껑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연은 조금 복잡하다. ‘인공 눈물’이라고 불리는 ‘히알루론산’ 성분 점안제가 유통이 많이 되는데 언제부턴가 제약사들은 1회용 점안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약 5㎝ 길이의 반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약물이 담긴 형태로 약 2~3회 투여량(약 0.4~1㎖)이 들어있다. 1회용 제품이 나온 이유 중 하나는 보존제 성분인 ‘벤잘코늄’으로 인한 증상 악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개봉 즉시 사용하기 때문에 보존제를 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1회용 제품이기는 하지만 용기 하나에 2~3회 쓸 수 있는 용량이 들어있는데다, 개봉 후에도 뚜껑을 닫을 수 있는 ‘리캡(Recap)’ 형태로 제작돼 환자들은 여러 차례 나눠서 사용하기 일쑤였다.

과연 1회용 점안제를 여러 번 사용해도 되는지 궁금증이 일었고, 지난 2015년 말 식약처는 “보존제가 들어있지 않은 일회용 점안제를 사용 후에 다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개봉한 후에는 1회만 즉시 사용하고 남은 액과 용기는 바로 버리도록 한다’라는 내용을 1회용 점안제 제품의 허가사항에 반영했다.

1회용 점안제의 재사용 허용 여부를 놓고 식약처는 전문가 단체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한 결과 “1회용 무보존제 점안제는 용기를 개봉하기 전에는 무균 상태가 유지되지만 개봉 후에는 무균 상태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쓰고 남은 점안제를 주머니나 가방 속에 보관하면 먼지와 같은 이물질이 들어갈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1회용 점안제의 뚜껑은 용기를 돌려서 닫는 뚜껑과는 달리 용기를 완전히 밀폐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논란이 끝나지는 않았다. 식약처가 1회용 점안제의 허가사항을 변경했지만 여전히 환자들은 남은 용량을 버리지 않고 여러 차례 사용하는 현상이 지속됐다.

지난해 10월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는 공론화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은 1회용 리캡 용기 점안제가 실질적으로 다회용으로 오용된다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이미 허가사항에 ‘한 번만 쓰고 버릴 것’이라는 내용이 반영됐지만 용기에는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들어있어 환자들이 여러 번 사용해도 되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번만 투여하고 남은 양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재정에도 낭비 요인이 된다.

사실 이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제약사들이 1회 투여 용량만 들어있는 용기에 담아서 팔면 된다. 아니면 뚜껑을 다시 닫을 수 없도록 조치하면 소비자들이 재사용할 우려는 사라진다.

식약처도 제약사 실무자들을 모아놓고 이 같은 조치를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제약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제약사들은 표면적으로는 “용기가 작아지면 원가가 치솟게 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아진다”는 인식을 내비친다. 예를 들어 점안액 1ml 들어있는 용기로 팔았던 것을 3개로 나눠서 생산하면 용기 2개 값이 더 들기 때문에 원가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험약가는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내려간다. 갑작스럽게 용기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제약사들의 속내는 이 뿐만이 아닌 듯 하다. 기존에는 3회 투여량을 한번에 팔았던 것을 3번에 나눠서 팔게 되면 약물 양만 따지면 매출은 3분의 1로 줄어들게 돼 매출 손실은 더욱 커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뻔히 알면서 먼저 나서서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다.

식약처 입장에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제약사들에 점안제 용기 크기마저 강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는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향후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황이 그대로 지속되거나 제약사들이 자율적으로 개선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식약처가 점안제 용기 크기와 뚜껑 규격을 강제하는 이상한 규제가 생길 수도 있다.

마치 11년 전 제약사들이 소량포장 단위를 공급하지 않아 의무 생산 규정이 신설됐을 때가 연상된다. 당시 제약사들은 “약국에서 요구하면 소량포장을 공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도 일부 영업현장에서는 약국의 요구와 무관하게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단위 용기를 공급했던 게 사실이다. 소량포장보다는 대량포장이 원가가 낮다는 속내도 있었다. 이상한 제도의 도입이 제약사들의 이기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객관적인 사실만 보면 제약사들이 소비자의 건강과 편의성을 위해 적절한 용기의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참에 발빠른 움직임으로 소비자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헐뜯고 싸우던 업체들이 왜 이럴 때만 쿵짝이 잘 맞는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