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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네트워크 R&D 개척자 '큐리언트', 왜 주목받나
입력 2016-07-12 08:52 수정 2018-07-16 12:52
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우리는 원천 기술이 없습니다”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45)는 최근 바이오스펙테이터를 만난 자리에서 "많은 바이오텍들이 원천기술을 강조하는데 사실 원천기술 자체가 기업가치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순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만난 바이오기업 CEO들이 자기 회사들이 가진 원천기술을 설명하는데 상당시간을 할애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남 대표는 “어떤 기술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만들어낸 ‘제품’이 가치 있는 것”이라며 "기술은 결국 시간의 함수로 기술도 패션이 유행을 타는 것처럼 사이클을 가진다"라고 언급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지만 일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남 대표는 큐리언트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로 아토피 치료제 'Q301'를 소개했다. 큐리언트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개발을 시작해 3년 반이라는 시간 만에 임상 2a상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보통 기업들이 아이디어 시작 후 전임상까지 가는 데 대략 4년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에 비해 상당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예라고 그는 설명했다.
큐리언트는 어떻게 원천기술 없이도 속도감과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이러한 전략의 기저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통한 네트워크 연구∙개발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남 대표는 강조했다.
◇’큐리언트’라는 사업모델을 세우게 된 이유
전문성과 효율성은 큐리언트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키워드다. 남 대표는 회사에 대해 얘기하기 전 이같은 모델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예를들어 천식치료제 신약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치자. 먼저 개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천식 전문가를 뽑고, 시설과 장비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FDA 발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임상 1상부터 신약 승인까지 성공률은 10%에 그친다. 빅파마(Big pharma)에 비해 자본 규모가 작은 바이오텍(Biotech)은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하는데 파이프라인을 ‘천식’으로 국한하기엔 위험성이 크다. 이같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항암제 등 다른 파이프라인을 가져가야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기존 인력이나 장비를 항암제 개발에 투여하기가 어렵다는 것. 한 분야에 특화된 인력과 장비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빅파마들이 왜 내부에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직이 커지면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자신들이 흥미로운 분야를 찾아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 회사가 필요로하는 연구를 일방적으로 지시받다보니 경영진과 연구소가 전혀 딴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회사가 요구하는 실험을 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연구를 진행하다보니 연구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빅파마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이이 얘기를 들으면 이에 얼마만큼 동감할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빅파마의 연구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인가.
◇네트워크가 네트워크를 부른다
원천기술도 없는(?) 큐리언트의 경쟁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을 이해해야 한다.
회사의 차별성은 탄탄한 네트워크과 9명의 프로젝트 매니저(PM, project manager)를 기반으로 하는 R&D 관리 전문가집단이라는 것. 프로젝트에 필요한 물리적인 연구 과정들은 대부분 외부 전문가에게 외주를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프로젝트 매니저는 디자인, 관리, 감독, 보고를 통해 연구∙개발을 이끌어 나간다. 이를 통해 전문성은 보장하면서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큐리언트는 개발중심 바이오벤처 형태를 가진 기업으로 기초연구소에서 파이프라인 들여온 다음 가치를 높인 후 임상 단계에서 기술이전을 하는 것을 기본 사업모델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No Research' 방식이냐는 물음에는 "아니다"라고 남 대표는 선을 그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진주같은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Research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아이디어의 소스가 관권인데 큐리언트는 최상의 기초연구 소싱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200여개 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으며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LDC(Lead discovery center), 한국파스퇴르 연구소와 파이프라인을 진행 중이다.
남 대표는 이전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머크에서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문가로,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초기 노바티스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았다.
◇균형잡힌 파이프라인 ‘리스크 매니지먼트’
그가 파이프라인을 설명하면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다. 가치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파이프라인이 균형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큐리언트가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보면 각기 다른 수익성과 시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큐리언트는 한국파스퇴르 연구소로부터 다제내성 결핵치료제 프로젝트를 기초로 분사했다. 그는 당시 결핵 치료제를 택한 이유에 대해 “결핵 치료제가 필요하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언급했다.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결핵 환자는 960만명으로 다제내성 결핵균 환자의 사망률은 약 44%이다.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환자가 개발 도상국에 국한돼 있었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이 뒷전으로 밀려있었던 것.
큐리언트는 약제내성 결핵 치료제를 미국 포함 20여개국에서 특허를 받은 상태로 2015년 미국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아 PRV(Priority review voucher) 획득을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PRV는 타 의약품 신약에 비해 우선적으로 심사권을 부여 받는 제도로 허가기간을 6개월 단축할 수 있으며 다른 회사로도 양도가 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8개사가 9개 바우처를 획득했다. 금액적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갖는다. 남 대표는 “임상 2상 완료 후 PRV를 취득할 수 있는데, 시점은 2~3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고 귀뜸했다.
남 대표는 빠른 시일내에 개발을 끝낼 수 있는 캐시카우를 찾고 있을 때 아토피 시장에서 가려움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요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에 뛰어들었다. 연구팀은 아토피성 피부염이 천식과 작용 기전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물질특허가 완료된 ZyfloTM(Abbott사) 원료 물질을 새로운 용도 특허로 출원하였고, 덕분에 FDA 임상 1상을 면제 받고, 현재 임상 2a를 마치고 기술 이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큐리언트는 파이프라인 중 2개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 중에 있다. 그중 Q701은 선천면역을 통한 항암면역 치료제로 향후 개발에 성공한다면 1조원 이상의 시장가치를 형성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되고 있다.
◇드라마 혹은 영화제작사의 위치에 있는 큐리언트
남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갑자기 영화산업 얘기를 꺼냈다. 영화산업이 걸어온 길을 보면 현재의 바이오산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1930~40년대는 헐리우드 영화의 전성기로 대형 영화사가 직접 영화 제작을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내부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방식 때문에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가 만연하게 되고, 이 때문에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형 영화사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덩치를 키운 투자사 자본 아래 영화산업은 배급사, 제작사, 전문작가 등으로 세분화된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 글로벌 빅파마의 파이프라인 위기도 비슷하다는 것. 빅파마는 대규모 연구 인력을 갖춰 R&D에 집중했지만 자체적 신약 개발로는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외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들여오기 시작했고, 이를 통한 신약개발 성공사례가 크게 증가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남 대표는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도 이러한 변화과정의 하나로 이해하면 된다"라며 "큐리언트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변화과정으로 보면 드라마나 영화 전문제작사의 위치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