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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동지’ 제약사들이 이별을 준비하는 방법
입력 2016-09-02 08:14 수정 2016-09-02 08:14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제약사들이 합종연횡으로 다른 업체와 짝을 이뤄 같은 제품을 공동으로 영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쟁력을 갖춘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와 영업력에 강점을 가진 제약사간의 일종의 짝짓기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기업간 거래라는 특성상 제휴 관계는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제약사들이 제휴 관계 청산에 따른 대책 마련에 고심이 크다. 매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간내 똑같은 제품을 직접 만들거나 다른 제약사로부터 유사 제품을 장착하는 치밀한 눈치 작전이 한창이다.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SK케미칼은 ‘로사르탄’ 성분의 복제약(제네릭) 개발을 위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착수했다. 한국MSD의 고혈압약 ‘코자’ 제네릭을 허가받기 위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SK케미칼은 지난 2008년부터 코자 제네릭 ‘코스카’를 판매하고 있다. 이미 판매 중인 제품을 또 다시 개발하는 셈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당초 SK케미칼은 한국MSD와 공동 판매 계약을 맺고 ‘코자’를 제품명만 ‘코스카’로 바꿔 판매했다. 코자와 코스카는 포장만 다른 ‘쌍둥이 제품’인 셈이다. 코자에 이뇨제를 더한 ‘코자플러스’는 ‘코스카플러스’로 팔았다.
SK케미칼은 2012년 한국MSD와 제휴 관계를 청산했고 코자 제네릭을 생산 중인 제약사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코스카와 코스카플러스의 제조원을 변경했다. SK케미칼은 지난 2014년 자사 공장에서 생산한 코스카플러스의 승인을 받고 에스케이코스카플러스로 새롭게 발매했다.
이번에 로사르탄 개발에 착수한 배경도 코스카를 직접 생산하려는 사전 절차인 셈이다. SK케미칼은 기존에 로사르탄 성분의 완제의약품을 만든 적이 없어 자사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하고 제조공정도 표준화됐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SK케미칼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MSD로부터 공급받은 제품을 팔아오다 제휴 관계가 청산되자 ‘국내제약사 위탁 생산’, ‘자사 생산’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똑 같은 제네릭을 장착하는 수순에 돌입한다. 제휴 관계가 끝난 이후 직접 생산하는 제품을 허가받으려면 매출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위탁 생산’이라는 절차를 거친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와 공동 판매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없도록 계약서에 명시하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다국적제약사와의 제휴 관계를 유지하다 계약이 종료된 직후 같은 제품의 허가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CJ헬스케어는 지난 2011년 한국MSD와 합의 하에 천식치료제 ‘싱귤레어’의 포장만 바꾼 ‘루케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위임제네릭이다. 루케어는 지난해 130억원어치 처방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그러나 한국MSD는 지난달 판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간판 제품의 판권 회수로 매출 공백이 우려된 CJ헬스케어는 싱귤레어 제네릭을 생산 중인 제약사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제네릭 제품인 ‘루키오’를 장착했다. 제네릭 제품의 경우 과학적으로 품질이 똑같기 때문에 제품명이 바뀌더라도 기존 영업력을 투입하면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일동제약은 2001년부터 국내 의료기기업체 제네웰이 개발한 습윤드레싱 ‘메디폼’을 판매해왔다. 메디폼은 상처 부위에 보습 상태를 유지해 상처가 덧나거나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제품이다.
일동제약은 메디폼을 연간 200억원대의 대형 제품으로 육성했지만 2014년 6월 제네웰이 메디폼의 판매권을 일동제약에서 미국제약사 먼디파마로 바꾸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일동제약은 간판 제품의 판권 이전으로 매출 공백이 불가피해지자 수소문 끝에 원바이오젠이 만든 ‘메디터치’를 확보했다.
JW중외제약은 1998년 애보트로부터 위장약 ‘가나톤’의 국내 판매권을 확보하고 판매해왔다. 가나톤은 한때 연 매출 300억원대를 기록하며 JW중외제약의 간판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판권 계약 종료와 함께 애보트가 직접 가나톤을 ‘애보트가나톤’으로 제품명을 변경해 팔기로 했다. JW중외제약은 가나톤의 제품명을 ‘가나칸’으로 바꾸고 시장을 공략 중이다.
대웅제약은 올해 초 간판 제품인 뇌기능개선제 '글리아티린'의 원료와 상표 사용권을 종근당에 넘겨주자 계열사 대웅바이오가 허가받은 '글리아타민'의 영업에 나섰다. 대웅제약이 글리아타민을 생산해 대웅바이오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매출 손실을 줄이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웅제약은 과거 앨러간의 보툴리눔제제 '보톡스'를 판매하다 판권을 회수당한 적이 있는데 최근 유사 제품인 '나보타' 개발에 성공하고 국내외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한미약품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천식치료제 '세레타이드'를 판매하다 1년만에 판권을 되돌려준 경험이 있다. 한미약품은 국내 최초로 세레타이드의 제네릭을 만들어 판매 중이다.
판권 회수의 공백을 유사 제품의 장착으로 만회하는 전략도 활발하다. 비록 다른 업체가 개발한 제품이지만 오랫 동안 해당 제품을 팔아왔던 영업 노하우를 유사 제품 영업에 투입하며 매출 손실을 줄이려는 의도다.
대웅제약은 2008년부터 MSD의 DPP-4 억제계열 당뇨약 '자누비아'를 판매했지만 계약 종료와 동시에 판권을 회수당했다. 대웅제약은 즉시 같은 계열의 약물인 LG생명과학의 '제미글로' 판매를 개시했다.
보령제약은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BMS와 업무제휴로 탁솔을 판매해왔지만 계약 종료로 탁솔의 판권은 BMS가 회수했다. 보령제약은 올해 초 삼양바이오팜이 지난 2001년 개발한 탁솔의 복제약(제네릭) ‘제넥솔’ 판매에 나섰다.
한독은 노바티스가 개발한 당뇨약 '가브스' 판매했는데, 노바티스가 2014년 가브스의 판매 파트너를 한미약품으로 변경했다. 한독은 미쯔비시다나베로부터 같은 계열의 당뇨약 ‘테넬리아’를 도입하고 판매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제약사와의 공동판매 전략은 단기간에 외형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근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많지 않아 원 개발업체에 유리하는 조건으로 제휴 조건이 형성되는 분위기다"면서 "자체 개발 제품의 경쟁력이 높이 않은 업체들은 언제라도 간판 제품의 판권을 회수 당할 수 있는 변수가 있어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