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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 문제 없지만 2건 낙오’..한미, 험난한 글로벌 도전기
입력 2016-12-29 10:25 수정 2016-12-29 16:05
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지난해부터 초대형 기술수출을 연이어 성사시킨 한미약품이 최근 험난한 글로벌 시장 도전기를 써나가고 있다. 전체 기술수출 신약 9건 중 2건이 글로벌 시장에서 개발이 중단됐다. 계약금을 포함한 잠재 계약 규모는 계약 당시 기준 약 9조2000억원에서 현재 6조8000억원으로 26% 가량 줄어들었다.
권리가 반환된 약물 2개 모두 약효가 아닌 글로벌 시장 경쟁 변화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의 높은 장벽을 체감하는 셈이다. 향후 추가 권리 반환의 가능성이 있지만 개발 중단 제품과 개발 지속 제품이 구분되면서 점차적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사노피 기술수출 3개 중 1개 권리 반환..계약 규모
한미약품은 지난해 사노피와 체결한 지속형 당뇨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일부 변경하는 수정 계약을 체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사노피와 총 39억 유로(약 4조9000억원) 규모의 퀀텀프로젝트(에페글레나타이드·지속형인슐린·에페글레나타이드+지속형인슐린) 기술 수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계약금은 4억 유로(약 5000억원)다.
퀀텀프로젝트는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핵심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약물이다. 랩스커버리는 바이오의약품의 짧은 반감기를 늘려주는 플랫폼 기술로 투여 횟수 및 투여량을 감소시켜 부작용은 줄이고 효능은 개선하는 기술이다. 약물의 체내 지속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부착하는 단백질 ‘랩스캐리어’를 바이오 의약품에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적은 용량으로도 약효를 최대 1개월까지 유지시키는 방식이다.
수정 계약의 내용을 보면 사노피는 퀀텀프로젝트의 3가지 신약 후보물질 중 지속형인슐린 개발을 중단하고 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한다.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인슐린콤보(지속형인슐린+에페글레나티이드)는 기존 계약이 유지된다. 단 지속형인슐린콤보는 일정 기간 한미약품의 책임으로 개발한 이후 사노피가 이를 인수하는 것으로 계약 조건이 변경됐다.
지속형인슐린의 권리 반환으로 계약 규모도 축소된다. 한미약품은 사노피로부터 계약금 4억 유로를 지급받았는데, 이 중 1억 9600만 유로(약 2500억원)를 사노피에 되돌려주기로 했다. 계약 종료시 지급키로 약정한 반환금과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용 의약품 생산지연에 따른 위약금 명목이다.
국내 제약산업 역사상 사상 최대 규모였던 사노피와의 전체 계약 규모도 축소됐다. 한미약품과 사노피의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계약금 4억 유로 포함 총 39억 유로 규모(약 5조원)였다. 여기에서 반환 금액 1억9600만 유로와 마일스톤 축소 금액 7억8000만 유로를 제외하면 나머지 2개 제품이 모두 상업화에 성공하면 총 28억2400만 유로(약 3조4000억원)를 받게 된다.
한미약품이 지난해부터 체결한 기술수출로 확보한 전체 계약 규모도 줄었다. 한미약품은 총 7건 9개 제품의 기술수출을 맺었고, 계약금을 포함한 계약 규모는 최초 계약 당시 약 9조2000억원(33억3000만달러+39억유로)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2건의 권리 반환으로 현재 6조8000억원(26억6500만달러+28억2400만유로)으로 26% 가량 감소했다. 이 금액은 나머지 7건이 모두 상업화 단계에 진입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어서 향후 더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권리 반환 2건, 약효 문제 아닌 시장 환경 변화로 개발 중단
이번에 권리가 반환된 지속형인슐린은 당뇨 환자에 매일 투여하는 인슐린을 주 1회 투여하는 방식으로 약효 지속 시간을 늘린 제품이다.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지속형인슐린의 권리 반환의 배경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인슐린 시장은 사노피와 노보노디스크가 매일 투여하는 제품으로 주도하고 있는데, 양사 모두 복용 횟수는 종전과 같지만 저혈당 위험을 낮춘 차세대 제품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저렴한 인슐린 제품의 바이오시밀러도 등장하면서 기존 인슐린 제품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일라이리리가 인슐린 바이오시밀러 '베이사글라'를 허가받았고 국내 업체 중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폴루스도 인슐린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중이다. 한미약품의 지속형인슐린은 투여 횟수를 줄였다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시밀러가 대거 시장에 진입할 경우 시장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노출된다.
업계에서는 향후에는 GLP-1 유사체나 인슐린에 GLP-1 유사체를 결합한 복합제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 판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GLP-1 유사체는 인슐린에 비해 체중 증가나 저혈당 부작용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사노피는 이달 초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으로부터 ‘인슐린+GLP-1 유사체’ 복합제를 허가받았다.
사노피는 한미약품의 지속형인슐린이 현재까지 효능과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상업화 이후 시장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나머지 2개의 랩스커버리 약물만 개발을 지속하기로 한 셈이다.
사노피가 개발을 지속키로 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최장 1개월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GLP-1 유사체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인슐린’ 콤보는 인슐린과 GLP-1 유사체를 결합한 약물로 약효 지속시간을 늘린 제품이다. 두 제품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한미약품보다 개발 단계가 빠른 제품은 없다.
결국 지속형인슐린의 권리 반환은 지난 9월 베링거인겔하임이 개발을 중단한 ‘올무티닙’과 판박이다. 약효 문제가 아닌 시장 경쟁력 저하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5000만달러(약 550억원)을 받고 항암제 ‘올무티닙’의 기술을 넘겼지만 지난 9월 권리 반환을 통보받았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올무티닙의 개발 중단을 결정했을 때 올무티닙의 약효와 안전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노출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무티닙의 경쟁 약물로 평가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보다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최근 오스트리아 바이오업체 바이라 테라퓨틱스로부터 차세대 항암 기술을 사들였다는 점도 올무티닙의 개발 중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글로벌 신약개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약강국의 길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리 반환 2건으로 일부 불확실성 해소..계약 종료 반환금 리스크 소멸
이번 지속형인슐린의 권리반환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사노피가 상업화에 근접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개발에 집중하고, 당사는 당뇨 치료 옵션의 미래 유망 신약으로 평가받는 주1회 인슐린 콤보 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노피 입장에서는 3건의 당뇨약 중 2건만 개발을 지속키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인슐린콤보의 개발 의지는 재확인했다는 얘기다.
사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사노피와의 퀀텀프로젝트 계약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제기하는 눈초리가 많았다. 사노피는 3건 모두 상업화에 성공하면 5조원 가량을 부담해야 하는데, 시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두 개발을 지속하기엔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컸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 사노피와의 계약은 계약금만 따져도 지난해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전체 4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계약이다.
이번 지속형인슐린의 권리 반환에 따른 세부내용을 보면 계약 종료에 따른 반환금 지급이 주목을 받는다.
당초 한미약품은 사노피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할 때 최대 2억 유로(약 2520억원)의 계약 종료(터미네이션) 조항을 반영했다. 계약이 중도에 파기된다면 한미약품이 최대 2억유로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미약품은 사노피로부터 받은 계약금 4억 유로 중 1억 9600만 유로(약 2500억원)를 사노피에 지급키로 했다. 계약 종료 반환금과 최근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용 의약품 생산지연에 따른 위약금을 합친 금액이다. 사노피는 올해 4분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후속 임상시험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한미약품의 생산 지연으로 임상시험 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졌다.
사노피와 계약시 계약서에 명시한 ‘터미네이션’ 조항이 발동되는 셈이다. 다만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이 금액을 지급하면, 이 조항은 소멸된다. 향후 나머지 2개 제품의 개발이 중단되더라도 한미약품이 되돌려줘야 할 금액은 없다는 의미다. 한미약품은 1억 9600만유로를 2018년 12월 20일까지 순차적으로 지급키로 했다.
한미약품은 이미 사노피로부터 받은 계약금 중 약 1800억원 가량을 수익으로 인식하지 않은 상태다. 회계 장부상으로는 2018년까지 약 700억원의 손실만 반영하면 돼 2억 유로 반환에 따른 재무 부담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그동안 ‘터미네이션’ 조항을 두고 한미약품의 리스크 중의 하나로 지목하는 시선이 많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계약 파기시 2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를 계속 안고 가기에는 국내 업체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계약 종류 반환금 리스크가 소멸되면서 향후 추가 계약 파기로 인한 대규모 금전적인 손실 리스크는 사라진 셈이 됐다. 다만 이번에 수정 계약을 맺으면서 한미약품이 개발 비용 일부를 부담키로 변경됐는데 향후 부담 금액 규모에 따라 수익 축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9건 중 2건이 낙오됐는데, 10%에도 못 미치는 신약개발 성공률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나머지 7건 모두 상업화 단계 진입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기술 계약 체결 이후 1년 가량 지나면서 개발 지속 제품과 중단 제품이 걸러지고 있다는 점은 점차적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신약 특성상 개발 단계에서 기술수출된 이후 상업화 가치가 높은 제품만 추려내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면서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제품이 모두 상업화 단계에 도달하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술수출 이후 개발 단계가 진전되면서 검증받는 품목과 권리가 반환되는 품목이 가려지는 것은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