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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의 투자노트]천연물 항암제 개발 어려운 이유
입력 2017-12-27 14:12 수정 2017-12-27 14:12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아직도 천연물의약품 소비량이 많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한약이 그렇고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천연물의약품이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천연물을 원료로 한 의약품은 식물, 동물 유래 추출물 등 구성이 다양하며 그중에서도 녹십자 '신바로', 동아에스티 '스티렌'과 '모티리톤', SK케미칼 '조인스정', 안국약품의 '시네츄라', 구주제약의 '아피톡신', 한국피엠지제약의 '레일라', 영진약품의 '유토마외' 등이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되어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천연물신약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여 2002년 '천연물신약의 신속허가 및 시판후 임상제도'를 도입하고, 천연물의약품의 안전성이 입증돼 있다는 이유를 들어 허가과정에서 안전성자료 제출을 면제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천연물신약은 안전성 연구에 해당하는 1상 임상, 약물상호작용, 용량반응 관계 등을 알아보는 약물동력학 연구를 하지 않아도 신약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약개발 기간 단축과 개발비용 절감의 이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17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품의 품목허가ㆍ신고ㆍ심사 규정' 일부를 개정함으로써 천연물신약의 임상시험 종류 및 시험방법, 천연물신약의 신속심사 근거 조항 등 천연물신약과 관련된 허가 규정이 모두 삭제되었다.
천연물신약 개발과 관련된 특혜가 사라진 것이다. 과거에 천연물신약과 관련되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사용돼 온 성분(한약제제 등으로)이라고 허가과정 또는 급여 단계에서 특혜를 주는 듯한 모습은 맞지 않다.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은 분명한 단계를 거쳐 확인돼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이 받아 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천연물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4년을 기준으로 약 7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출처 보건산업기술이전센터 시장정보 report 45, 보건산업기술이전센터 2014.7) 천연물의약품 시장의 사업 모델에 따라서는 건강기능성식품 시장과도 상당부분 겹치는 시장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세계 시장의 흐름도 천연물의약품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천연물의약품 개발의 예를 들어보자. 소화성궤양 치료제로 분류되어 있는 스티렌정의 경우 애엽(말린 쑥)을 에탄올로 추출한 제품으로 지표 물질은 유파틸린(Eupatilin)이라는 성분이다. 유파틸린은 위점막 손상을 보호하는 내인성 세포보호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 E2(prostaglandin E2)의 생합성을 증가시켜 위점막을 보호하는 MOA를 갖고 있다. 천연물신약의 경우 국내 판매는 '천연물신약의 신속허가 및 시판후 임상제도'에 따라 생산공정의 표준화를 위한 지표물질을 확인하고 천연물 추출물로 구성된 의약품을 제조하며 이를 이용하여 임상2상 및 3상을 거쳐 시판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정으로 생산된 의약품은 과연 해외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할까?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먼저 스티렌정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약효성 물질의 순수 분리가 이루어지고, 분리한 화합물을 이용한 비임상 및 안전성 시험을 거친 이후 유효성 시험을 거쳐 시판하게 된다. 안전성 시험 면제로부터의 비용 및 허가기간 절감의 장점은 해외시장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과거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화합물 신약과 비교해서 천연물신약의 장점은 무엇인가?
먼저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확보한 이후 진행하는 화합물 신약 개발과정보다 선도물질 확보가 간편하다고 볼 수 있다. 대개의 천연물 라이브러리는 한의학 서적에서 전해오는 약효를 기반으로 탐색 과정을 거치므로 막연하게 진행하는 화합물 신약의 탐색과정 대비 선도물질 확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천연물 탐색과정에서 약효를 나타내는 분획(천연물의 다양한 추출물 중 하나)을 이용하여 순수한 화합물 정제를 진행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화합물이 정제되어 물질특허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MOA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탐색을 진행하게 됨으로써 MOA를 밝히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또한 천연물의약품 개발은 임상 과정을 진행하기 위한 CMC(Chemistry, Manufacturing, and Controls) 정보 확보 등의 추가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유효물질 분리 및 대량 생산과 관련하여 천연물을 이용한 생산이 가능하다면 별문제는 없으나 생산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측면에서 새로운 합성방법 개발을 통한 대량 생산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며 개발 초기에 관련된 생산방법 개발이 진행된다면 사업성 분석이 더 용이해질 수 있다. 천연물신약의 개발은 선도물질이나 후보물질의 탐색과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용증의 경우 화합물 신약개발 대비 장점을 보일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1500개 이상의 기업이 중약(천연물을 이용한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생산액은 약 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필자도 중국 방문시 다양한 중약을 생산하는 현대화된 제조설비를 견학한 경험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약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속설도 있다. 중국의 경우 시장규모로도 충분히 규모 있는 사업이 가능한 경우로 중국 제약사들이 원하는 사업 모델을 확보한다면 국내 기업이 단기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의 한방 의약품을 제조하는 생산 시설의 경우 미국, 유럽 시장으로 시장을 확대하기에는 제조 설비의 인증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같은 시설로 중국 시장용 의약품을 제조하여 중국 제약사 브랜드로 중국 시장에 판매한다면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품, 의약품, 화장품 시장의 경우 한국이 상당한 브랜드 파워 및 제조설비 운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측면과 한국산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한 사업모델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대부분의 천연물의약품 재료는 중국산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판매되는 몇 종류의 천연물 기반 항암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15년전쯤 천연물 기반의 항암제를 개발하는 회사의 대표를 만났던 기억이 난다. 한약재로 만든 항암제를 말기 암환자에게 정맥주사를 통해 처방하여 높은 치료 효과를 보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생산공장 건립 및 임상시험을 위한 자금을 투자 받기를 원하는 기업이었다. 현재 이 기업은 임상만 몇 년째 진행중이며 아직 시판 허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천연물 기반의 의약품을 개발할 때 특히 항암제의 경우는 많은 환자들이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병원의 선고를 받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접근하므로 투약하기가 쉽다. 물론 치료 효과가 있는 의약품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의약품의 제조 및 판매의 경우 보수적인 업계 관행 및 허가 제도 등에 비추어 볼 때 한약제 추출물의 항암제로써의 허가 및 발매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판단한다. 국내 의약업계는 현재 합성 의약품에 기반한 산업으로 허가제도 및 업계관행 모두가 합성의약품만을 치료제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 및 한약학이 업계의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뉴스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옻나무 진액(한약명 칠피.건칠)으로 만든 한방 항암제 '넥시아'의 경우를 보자. 넥시아는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에서 처방전에 기반하여 판매하는 한의약품으로써 많은 말기 암환자에게 치료 효과를 보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때 연간 매출액 규모가 100억원대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는 병원 및 지적 재산권자간의 이해관계로 한방병원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다. 넥시아의 개발자는 한방병원에서 판매하던 제품을 항암제로 개발하여 제약사 기반 사업으로 확장을 시도하였으나 위에서 말한 다양한 이유로 항암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시도는 실패하였으며 기존 복용 환자들은 지속적인 의약품 공급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는 한약재 기반 항암제 개발 사업 보다는 많은 한의원을 대상으로 한의사가 처방하는 의약품에 대한 대행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업모델을 진행한다면 의약품 허가 및 관리와 관련된 규제를 회피하고 회사는 판매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천연물의약품 시장은 성장하고 있고 화합물 신약 대비 많은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의약품 허가제도하에서의 천연물의약품 개발은 개발기간 단축, 선도물질 확보, 생산비용 절감 등의 실질적인 경쟁우위 요소를 파악하고 수익성 높은 개발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