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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고]'유전자가위' 우수연구 3건, 의미와 전망
입력 2018-01-04 07:13 수정 2018-01-04 07:13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최근 몇 년 동안 유전자가위는 학계와 바이오 제약산업계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매년말 국내외 언론과 학술지, 학술단체가 선정하는 과학기술 분야 최고 성과에 유전자가위가 예외없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2017년 테크놀로지 10대 이슈[1] 중 하나로 비트코인, 인공지능과 함께 유전자가위를 꼽았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도 10대 과학기술 뉴스[2] 연구성과 부문 1위로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 돌연변이 교정 연구를 선정했다.
학술지 사이언스는 2017년 10대 연구성과[3] 중 하나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변형시킨 염기교정가위(Base Editor)를 선정했고 네이처도 지난해 중요한 업적을 이룬 10대 인물[4] 중 한명으로 이를 개발한 David Liu Harvard대 교수를 선정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가장 놀랍고 획기적인 혁신이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불과 수년 전에는 극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생소했던 유전자가위가 이제는 일반인도 알아두어야 할 상식처럼 됐다.
지난 한해동안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유전자가위 연구성과 3건을 소개하고 그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유전자가위를 환자 체내에 직접 주입하는 유전자치료 임상시험이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수행됐다. 지난해 11월 Sangamo Therapeutics, Inc.[5]는 헌터 증후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1세대 유전자가위인 zinc finger nuclease(ZFN)와 치료용 유전자를 환자 체내에 직접 투여했다고 발표했다. 이전 임상시험은 유전자가위를 체내(in vivo)에 직접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체세포를 취한 후 체외에서 유전자가위를 체세포에 전달해 유전자가 교정된 체세포를 만들고 이를 환자에 투여하는 체외(ex vivo) 치료 방식이었다. 이미 미국, 중국, 영국에서 암, AIDS에 대한 체외 치료 임상시험이 수행된 바 있으나 이는 T 면역세포와 같이 혈액을 취해 분리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방법이다. 체내 치료가 가능해지면 이러한 제약없이 보다 다양한 질환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3세대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체내 치료 임상시험도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해외 연구동향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명윤리법은 유전자가위를 환자 체내에 직접 투여하는 유전자치료 임상시험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법 개정이 되지 않으면 국내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어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자 하는 국내 의료진, 기초의과학 연구자, 기업에게도 생명윤리법 관련 조항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18년 새해에는 최근 국내외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생명윤리법이 합리적으로 개정되기를 기원한다.
최초의 유전자가위 체내 치료에 사용된 유전자가위가 2세대, 3세대가 아닌 1세대 ZFN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ZFN은 체외 유전자가위 치료에도 최초로 사용된 바 있다. 다만 2세대, 3세대에 비해 만들기가 어렵고 Sangamo가 지적재산권을 거의 배타적,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Sangamo는 시가총액이 1조4000억원에 달해 2세대, 3세대 유전자가위에 기반한 회사들보다 시장에서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유전자가위가 개발되더라도 이전 세대 유전자가위의 가치가 줄어들지않고 오히려 더 커진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둘째, 앞서 기술한대로 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염기교정가위와 그 개발자를 각각 10대 성과와 10대 인물로 선정했다. 염기교정가위는 DNA 한 가닥만 자르도록 변형시킨 CRISPR-Cas9에 시토신(C) 또는 아데닌(A) 염기의 탈아미노효소를 연결한 것으로 C를 T로, A를 G로 대체하는 단일염기변이를 일으키는데 사용된다. 대부분의 유전질환이 단일염기변이에 의해 초래되기 때문에 염기교정가위가 유전병 치료에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기존 CRISPR-Cas9을 이용해서 DNA 두 가닥을 자르고 주형이 되는 DNA를 세포에 주입해 단일염기변이가 교정되도록 할 수도 있으나 그 효율이 낮고 염기 몇 개가 삽입 또는 제거되는 무작위적 변이를 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염기교정가위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한 것으로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염기교정가위를 제 4세대 유전자가위로 구분하면서 이전 세대 유전자가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있으나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염기교정가위는 여전히 CRISPR-Cas9에 기반한 것으로 기존 CRISPR 원천 특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뚜렷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분명하다. 단일염기변이가 아닌 질병 유전자 녹아웃과 염색체 일부의 결실, 중증 A형 혈우병의 주된 원인이 되는 역위 교정 등에는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일염기변이의 경우에도 A to G, C to T를 제외한 다른 변이 즉, A to C/T, C to A/G 변이를 일으키려면 여전히 기존 유전자가위를 사용해야 한다. 염기교정가위가 학계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혁신적 도구임은 분명하나 기존 유전자가위를 전면 대체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지난 한해동안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또 하나의 유전자가위 연구 성과는 인간 배아논문[6]이다. 필자가 이끄는 IBS 연구팀과 미국 오리곤 보건과학대학 Mitalipov 교수팀은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변이를 인간 배아에서 교정하는데 성공해서 그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특히 교정된 세포와 교정되지 않은 세포가 함께 존재하는 모자이크 현상과 유전자가위의 표적이탈효과 문제를 거의 완벽히 해결하여 주목을 받았다. 논문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Altmetric[7]에 의하면 이 논문은 지난 한해동안 발표된 수십 만 건의 논문 중 4위를 차지했다.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논문이 발표된 후 국내외에서 다양한 논란이 있었다. 우선 인간배아 연구를 금지하고 있는 생명윤리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안전성이 입증되기까지는 교정된 배아를 산모에 착상시키는 임상은 불허하더라도 배아단계에서 유전자 교정 여부를 확인하는 연구는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를 불허하면 기술 축적과 발전이 불가하기 때문에 일단 연구부터 허용하자는 것이다.
반면 국내의 일부 종교 종파와 생명윤리학자들은 인간 배아를 연구에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연구 성과를 비난하고 폄하했다. IBS 연구팀은 국내법을 준수하여 우리나라에서 배아를 생성하거나 유전자가위를 주입하지 않았고 배아 관련 모든 실험은 미국에서 수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인간 배아에 유전자가위를 도입해 돌연변이를 교정하려는 연구는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미국, 중국, 영국, 스웨덴, 일본 등에서는 합법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네이처 논문에 대해 학술적 이견을 제시하는 연구자들도 있었다. Egli et al[8]은 동료평가를 받지 않은 상태로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한 논문을 통해 돌연변이가 상동염색체 재조합에 의해 교정된 것이 아니라 처녀생식이 일어났거나 돌연변이 주변에 유전자 수 백 개 이상의 염기쌍이 결실되어 교정된 것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흥미로운 가설이기는 하나 실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최근 Mitalipov 교수팀과 IBS 연구팀이 배아 DNA와 배아줄기세포를 재분석한 결과 처녀생식, 결실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논문을 투고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귀납적이기 때문에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다른 유전자 변이에 대해서도 유전자가위를 제작해 배아에 주입하고 상동염색체 재조합에 의한 교정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생명윤리법에 의해 연구 목적으로 배아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전자가위는 올해에도 다양한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일례로 조만간 유전자가위를 활용해 만든 농작물이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시험재배를 마치고 판매되기 시작해 국내에도 수입될 가능성이 있다. 외부 유전자가 도입되지 않고 내부 유전자에 변이를 도입해 만든 농작물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GMO로 규제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국내에서 GMO로 규제한다면 통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국내 관련 산업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숙제거리는 생태계와 환경 문제이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모기와 같은 해충을 박멸하고 매머드와 같은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려는 연구가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곤충이나 어류의 알에 유전자가위를 주입해 돌연변이 동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동물들을 환경에 노출시켰을 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규제하고 금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비트코인, 드론 등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유전자가위도 기존 산업의 혁신과 새로운 산업의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사회가 적절히 지원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8/2017120802065.html
2. http://10news.kofst.or.kr/
3. http://vis.sciencemag.org/breakthrough2017/
4. https://www.nature.com/immersive/d41586-017-07763-y/index.html
5. http://www.sciencemag.org/news/2017/11/human-has-been-injected-gene-editing-tools-cure-his-disabling-disease-here-s-what-you
6.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3305
7. https://www.altmetric.com/top100/2017/
8. https://www.biorxiv.org/content/early/2017/08/28/18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