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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석의 신약연구史]'발기부전' 임상, 블록버스터 탄생
입력 2019-04-17 13:52 수정 2019-04-18 09:47
남궁석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
지난 연재까지는 협심증과 고혈압 치료를 목표로 개발되던 실데나필이라는 물질이 기대하지 않던 남성 발기 유도라는 ‘부작용’을 발견한 과정까지 알아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렇게 우연히 발견한 약물의 ‘부작용’이 어떻게 발기부전 치료제라는 미충족 의학적 수요를 충족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개발로 이어지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발기부전치료제로써의 실데나필의 임상 개발
화이자 연구자들은 1993년부터 기존에 협심증 및 고혈압 치료제를 목표로 개발하던 실데나필이 발기부전 치료제로써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에 사내에서 파일럿 연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들은 한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어떻게 발기부전 치료제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여 약물의 효과를 측정할 것인가? 원래 협심증이나 고혈압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한 연구진으로써는 전혀 경험이 없는 분야로의 연구를 시작하는 셈이었다. 이들은 이전부터 발기부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오던 비뇨기과 의사 클라이브 깅겔(Clive Gingell)의 자문을 얻어서 성기의 강직도를 측정하는 리지스캔(Rigiscan)이라는 기기를 이용하여 약물의 효과를 수치화하게 되었다. 리지스캔은 남 성기에 고무로 만들어진 튜브를 감고, 원 둘레와 강직도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게 된다. 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링 장치를 통하여 발기의 타이밍과 강도, 지속력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1].
최초의 파일럿 연구는 화이자 사내에서 심리적인 발기부전을 겪는 16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고 실데나필의 발기 강화효과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첫번째의 파일럿 연구는 협심증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3회씩 지속적으로 투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약물의 성격상 1회 복용에 의해서 효과가 관찰된다면 훨씬 바람직할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것을 감안하여 1994년 2차 파일럿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한번의 실데나필 투약을 통해서 발기를 유지하는 정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실데나필의 용량을 달리하여 이들이 발기 지속시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였다. 위약 복용군의 경우 강직도 유지 평균시간이 1.3분에 불과하였지만 10mg 용량은 3.1분, 25mg은 8.0분, 50mg 복용군은 11.2분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실데나필의 효과는 복용량에 비례하여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2].
이러한 사내 파일럿 연구의 결과에 고무된 화이자는 실데나필의 본격적인 임상 개발에 돌입하였다. 현재의 제한적인 결과는 고무적이긴 하지만, 특정한 지역에 사는 제한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이었고, 리지스캔에 의한 정량적인 결과는 실데나필의 발기부전 개선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지만, 통제된 환경에서 테스트한 것보다는 실제 가정 환경에서 실데나필의 복용이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광범위한 인구대상으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평균 연령 56세의 514명의 발기부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중맹검 임상시험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25, 50, 100mg 용량의 실데나필 또는 위약이 처방되었으며, 환자들의 발기부전 요인으로는 심인성 요인이 25%, 구조적인 요인이 32%, 복합적인 요인이 43% 로 추산되었다. 실데나필의 가정 환경에서의 효능은 15문항으로 구성된 설문(International Index of Erectile Function)에 의해서 측정되었다[3]. 발기 여부와 발기 지속력을 묻는 설문에서 치료 전 및 위약 투여군의 응답은 5점 만점 평균 점수로 2점 내외(‘간혹’ a few time)였다면, 실데나필을 복용한 환자들은 용량 의존적으로 발기 능력 및 지속력이 향상되어 100mg 용량군의 경우 4점(‘대부분’ Most times)의 점수를 보임으로써 발기 능력의 대폭적인 개선을 보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4]. 보통 판매 승인전의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참여자들은 임상시험이 끝나면 기존의 표준적인 치료요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실데나필의 임상 시험 참여자들은 임상시험이 끝나도 표준 치료요법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계속 실데나필 투여를 받기를 희망하였다. 결국 화이자에서는 이중 맹검 임상시험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들에게 실데나필의 판매 허가가 날떄까지 실데나필의 오픈 라벨 시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애초에 연구진들은 실데나필의 경우 심장질환이나 당뇨 등의 위험요소가 없는 비교적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여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임상 시험을 통하여 실데나필은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환자, 당뇨 환자, 전립선암 시술 환자, 고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큰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임상시험 도중 몇가지 부작용이 발견되었는데, 높은 용량으로 실데나필을 투여받은 사람들은 시야가 파랗게 보이고 빛에 대한 지각이 높아지는 현상이 간혹 발생하는 것이 보고되었다[5]. 연구 결과 이 현상은 광 수용체에 존재하는 인산다이에스테라아제인 PDE6의 저해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데나필은 비교적 특이적으로 PDE5 를 저해하는 저해제이지만, PDE6의 경우 PDE5에 비해서 10배 낮은 민감도로 저해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6]. 그러나 실제로 사람에게 투여되는 실데나필의 용량에 비해서 몇 배 높은 실데나필을 지속적으로 투여해도 이러한 문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외에 두통이나 얼굴 붉어짐과 같은 부작용이 보고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PDE5에 의한 혈관 확장 효과에 기여한 것이었다. 특히 실데나필이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심혈관 질환 관련 안전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실데나필은 건강한 사람에서 어느 정도의 혈압 강하효과가 있음이 확인되고, 대부분의 심장질환 환자에게서도 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단, 이전 연재에 언급한 것처럼 실데나필은 니트로글리세 린과 같이 사용하였을때 상승 작용을 일으켜 지나친 혈압 강하효과를 유발하므로, 이를 같이 사용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게 되었다.
90년대 말까지 화이자는 약 21종의 임상시험을 통하여 4,5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데나필의 효능을 테스트하였고, 실데나필은 1998년 FDA로부터 ‘비아그라’(Viagra)라는 이름으로 판매 승인을 얻었다. 비아그라는 PDE5를 타깃으로 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 class) 신약으로써 발기부전 치료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고, 2003년에는 매년 미국내에서 1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타다라필(Tadalafil)
한편 화이자에서 PDE5를 저해하는 실데나필을 개발하고 있을 때 다른 제약회사들도 PDE5를 협심증이나 심혈관 질환의 타깃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미국의 바이오텍 회사인 ICOS는 갈락소웰컴(Galaxo Wellcome, 현재의 GSK)과 합작하여 PDE5를 저해하는 화합물을 개발코자 하였다. 이들은 이전에 보고된 낮은 활성을 가진 PDE5의 저해물질인 에틸-카보라인-3-카르복실산(ethyl-carboline-3-carboxylate)를 시작물질로 삼아, PDE5에 대한 저해 활성과 특이성이 좋은 화합물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들은 PDE5에 대한 IC50이 5nM에 달하는 화합물을 발굴하였고, 이 화합물은 IC351라는 코드명이 붙여졌다[7]. 이 화합물은 자프라니스트나 실데나필과 같은 기존에 알려진 PDE5 저해물질과는 전혀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 화합물이었다.
화이자 연구진들이 실데나필의 개발을 협심증 치료제로부터 발기부전 치료제로 목표를 바꾼 이후, IC351의 개발 역시 발기부전의 치료제로써 방향이 변경되게 되었고, 1995년부터 임상 1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제휴하고 있던 갈락소 웰컴은 자신들이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발기부전 치료제의 개발에 주저하였고, ICOS와 갈락소 웰컴의 계약은 1996년 만료되게 되었다. ICOS는 대신 새로운 파트너인 릴리(Eli Lilly)와 손잡고 릴리 ICOS(Lilly ICOS)라는 합작법인을 세우고 IC351의 발기부전 치료제로써의 임상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2002년 이들은 미국 비뇨기학회연합(American Urological Association)에서 이제 타다라필(Tadalafil)이라는 성분명으로 불리게 된 약물의 임상결과를 발표하였다[8]. 주목할 만한 점은 타다라필은 복용 후 36시간 이후에도 효과가 유지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타다라필의 체내에서의 반감기는 17.5시간으로써 실데나필의 4시간에 비해서 4배 이상 길기 때문이었다[9]. 2003년 FDA는 타다라필의 판매를 승인하였고, 타다라필은 '시알리스(Cialis)'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등의 발기부전치료제는 2016년 현재 43억 달러 규모의 전세계 시장 규모를 갖는 새로운 의약품 시장을 창출하게 되었다. 원래 개발 목적이 아닌 부작용에서 힌트를 얻어서 개발된 약물이 궁극적으로 연매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되는 과정은 신약개발 과정이 근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예측 불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본연적인 예측 불가능성을 감안한 기업의 유연한 의사결정 역시 블록버스터를 가능케 하는 요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으로써 혈액 순환의 원리의 규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기전의 혈압 조절 약물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에 이르는 ‘혈액 순환’ 에 관련된 약물의 역사에 대한 연재를 마치도록 한다. 다음 회부터는 인류가 오랫동안 투쟁해 왔던 바이러스와의 전쟁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도록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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